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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대택 Sep 13. 2020

036 북한과 결별하고
만족해하는 남한

‘한국 올림픽 역사를 바로 잡습니다’ 연재를 마치며



바덴바덴 IOC 총회 이후 벌어질 일들


1963년 10월 19일 IOC 총회에서 남한과 북한은 서로 다른 두 주체의 국가올림픽위원회 NOC를 인준받습니다. 이제부터 남북은 서로 다른 주체로 올림픽에 출전하게 되는 것이죠. 


남한은 이 결과에 만족해합니다. 우려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은 결과였죠. 북한의 명칭이 ‘North Korea’로 확정됨에 따라 남한의 ‘Korea’에 비해 하위로 해석될 수 있었고, 북한의 국기나 국가도 미정 상태였으니까요. 이 일을 담당했던 외무부 장관도 다행으로 여겼고 (36-1), 주한 미국 대사관과 긴밀하게 소통했던 외무부 지연태 국제기구과장도 만족했으며 (36-2), 이효 KOC 위원장도 주한 미국 대사관에 전화해, 성공적인 바덴바덴 총회 결과가 있기까지의 대사관과 미국 국무부의 도움에 감사를 표합니다 (36-3). 이효 위원장은 미국, 영국, 인도, 스위스 대표들에게 감사를 표했고, 이번 결과가 박정희 위원장에게 보고되었음도 확인시킵니다. 눈에 띄는 것은 브런디지에 대한 표현입니다. 


‘Yi said Brundage would always be a 'hero" to Korean sportsmen for his role in protecting Korea's interests. Yi, who has already made to Chairman Pak, confirmed ROKG well pleased with outcome Baden-Baden conference. 이효는 남한의 이익을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한 브런디지가 남한 스포츠인들의 언제나의 “영웅”이었다고 말함. 박 의장에게 보고했다는 이효는 바덴바덴 총회의 결과를 남한 정부도 기뻐함을 확인시킴.’


남한과 KOC에 실망했던 브런디지는 마지막 순간에, 결국은 그가 늘 그래 왔듯이 KOC를 지원해 주게 됩니다. 


10월 29일 이상백이 브런디지에게 보낸 편지는 미안함의 감사가 엿보입니다 (36-4). 남한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하면서도 첨예하게 대립된 한국문제에 대해 총회나 이사회에서 방어해준 것에 대한 감사한 글이었죠. 


북한은 자신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DPRK 대신 북한 North Korea로 명명되는 것에 대한 불만을 지속적으로 제시하게 됩니다. 한국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에게는 여전히 남은 숙제가 되죠. 이 문제는 두고두고 북한과 IOC의 갈등으로 남습니다. 


여기에 북한은 1963년 말 신흥국경기대회 GANEFO, Games of the New Emerging Forces에 참가합니다. IOC가 매우 불쾌하게 여겼던 스포츠 경기대회였죠. 이를 두고 북한과 IOC는 또다시 대립니다. 


IOC 사무총장 오토 마이어는 1964년 초 사임을 표합니다. 그는 1946년 처음 사무총장 chancellor 직을 맡아 약 19년 동안 무임으로 일합니다. 그는 1970년 2월 69세의 나이로 로젠에서 타계합니다. 이 연재 글의 기간이 그의 재임 기간과 동일하니 그의 한국 올림픽 역사와의 관계는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합니다. 아! 오토! 


이상백은 1964년 도쿄 IOC 총회 (1964. 10. 6-8.)에서 이기붕에 이어 남한의 두 번째 IOC 위원으로 선출됩니다. 이상백은 1966년 4월에 타계합니다. 


북한은 1964년 도쿄올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했다가 철수합니다. 그리고 1972년 뮌헨올림픽에 첫 출전하게 됩니다. 


브런디지는 1972년 9월에 IOC 위원장직을 내려놓습니다. 그는 1975년 5월 타계합니다. 



연재를 마치며 



브런치에 ‘한국 올림픽 역사를 바로 잡습니다’를 시작한 지 딱 1년입니다. 첫 글 ‘한국의 올림픽 역사를 제대로 써 볼까 합니다’를 2019년 9월 14일에 올렸네요. 


이 연재 글들은 브런디지 컬렉션 Brundage Collection을 기초로 합니다. 브런디지 컬렉션은 1946년부터 브런디지가 위원장직을 내려놓는 시기까지 한반도와 관련된 그의 개인적 공적 자료들의 집합체이죠. 이기붕, 이상백, 장기영, KOC, 북한올림픽위원회 등의 자료입니다. 여기에 주한 미국 대사관이 미국 국무부와 소통하였던 자료와 외무부의 자료까지 추가로 더해져 이번 연재가 가능했습니다. 


혹시 이 글들이 이전의 글들을 모아 조합한 것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하건대 이 글들은 해방 이후부터 63년 홍콩 남북 체육회담까지, 그러니까 IOC에서 ‘한국문제 Korea Question’ 라 불리는 기간 동안의 올림픽 역사를 가장 세밀하고 적확하게 들여다본 글입니다. 우리에겐 처음 소개되는 내용들이었죠. 


연재를 하면서 글 안에는 사견이나 해석을 가급적 피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한도 끝도 없이 길어질 것이고 자칫 제 주관으로 흐를 것 같았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최대한 가능하면 사실만 적시하고 대신 날것의 느낌을 더하고자 했습니다. 내용만 정확하게 기술하며 오히려 독자들이 더 좋은 상상과 해석을 해 갈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는 사이, 오히려 몰랐던 사실이나 앞으로 역사를 공부하는 분들이 했으면 좋을 지점도 드러나더군요. 


이 연재가 저의 스포츠 역사 작업의 끝이 될지, 아니면 또 다른 공부를 시작하는 첫 발일지 아직 모릅니다. 이 주제와 관련하여 조금 지친 것도 사실이고요. 그러나 이 작업이 끝이던 시작이던 지금까지 소개한 자료들을 어떻게 다른 이들과 공유할 것인가와, 추가적으로 어떠한 자료들을 더 찾고 발굴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숙제는 아직 남았습니다. 최소한 더 넓은 시간대의 역사를 공부하지는 않을지라도 지금 가지고 있는 자료와 추가적인 자료 발굴 작업은 지속적으로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연재 글들이 맘에 드셨다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좋은 이유로 자료를 사용하신다면 누구와도 공유하고 제공하고, 만약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도움도 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벌여온 작업들



2012년 1월 언젠가, 종이로 구독하던 경향신문의 한 면 구석에서 1948년 런던올림픽 단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순간 알았죠. 저의 할아버지 것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그때부터 할아버지의 흔적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흔적이 많지 않음을 깨닫는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개인 호기심으로 우리 올림픽 역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2012년 학교의 학생 국제교류 사업에 선정되어 학생들과 런던에 가게 됩니다. 올림픽 기간이었죠. 조금은 기대를 걸고 런던에서 학생들과 일부 다른 일정으로 올림픽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우리 선수단과 관련된 자료를 일부 찾기도 했지만 기대만큼의 많은 자료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무엇인가 마무리는 해야 했기에 국내에서 찾았던 자료들과 런던에서 가져온 자료를 합쳐 자그마한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1948년 런던올림픽 한국선수단’을 검색하시면 바로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 36-1] 1948년 런던올림픽 한국선수단 (이대택, 2013), 국립중앙도서관



이후 런던에서 자료를 찾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함께 분명 그 자료들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또한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해방 직후가 미군정시대였고, 한국동란을 거쳤으며, 국제올림픽위원회 IOC와의 관계에서 이루어졌음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러니, 이 자료들은 분명 미국의 국가기록원 NARA나 IOC 도서관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도달합니다. 


그리고 자료를 찾기 시작한 지 4년 만인, 2016년 1학기, 연구년을 신청하고, 호주 (56년 멜버른 하계올림픽), 미국 (군정 기록, 국가기록원, 일리노이대학교), 스위스 (48년 생모리츠 동계올림픽, IOC 본부)를 갑니다. 그리고 기다리던, 그러나 기대하지 않았던 자료들을 찾게 됩니다. 이때 찾은 브런디지 컬렉션 Brundage Collection은 최상의 선물이었죠. 


브런디지 컬렉션의 자료들은 매우 진기합니다. 해방 이후 한국동란을 거쳐 63년 홍콩 남북 체육회담까지의 기록을 거의 온전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국내 외무부 자료와 주한 미국 대사관의 자료를 덧대면 거의 완벽에 가깝죠. 


자료가 있다고 일이 빨리 진행되지는 않았습니다. 분량도 분량이지만 자료들을 읽어보고, 짜 맞추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설상가상 여기에 전적으로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기에 틈나는 대로 집중 작업 형식을 빌었습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약 4년이 걸렸네요. 첫 자료를 찾기 시작한 지 도합 8년입니다. 


일을 같이 해 볼까. ‘스파이’라는 스터디 그룹도 하나 만들었죠.



[사진 36-2] 스파이 모집 공고 (2017)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더 많은 자료들을 위해  



글을 쓰면서도 느꼈지만, 아직 산발된 자료와 기록들은 전 세계 어디에도 꽤 많이 퍼져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 자료들은 우리 선배들이 했던 일들이 다시 후세들에게 알려지게 되는 날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어서 찾아와야죠. 


이미 말했던 것과 같이 어쩌면 연재를 끝내는 마당에 앞으로 제가 할 수 있는 남은 일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료를 더 찾는 것 외에도 이미 있는 자료를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도 고민하고 실행하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주요한 기록과 기억들이 생산되고 있고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모아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중에 역사가 될 지금 현재의 사건과 일들을 모두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어쩌면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여기 있을 수도 있겠죠. 


현재의 기록은 미래의 역사가 됨을 저는 한번 이상 믿습니다. 








인용자료



(36-1) 국립외교원. [L-0002-07/1265/757.1] 1964년도 동경올림픽 남·북한단일팀 구성문제. 전4권 (V.4 1963. 9-12) p. 160. 


(36-2) 600.3 Amusement Sports, 1963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Classified General Records, 1952-63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p. 6-7.


(36-3) 600.3 Amusement Sports, 1963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Classified General Records, 1952-63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 3. 


(36-4) 이상백이 브런디지에게 보내는 편지 (1963. 10. 29.) Brundage Collection, Lee, Dr. Sang Beck, 1946-1966,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사진 설명]



브런디지 컬랙션 Brundage Collection 박스 제목 표지,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도서관 기록관 University Archives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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