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예비인준’임을
명심하시길

브런디지가 여운형에게 보낸 편지

by 이대택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1947년 6월 19일부터 21일까지 개최된 국제올림픽위원회 IOC 총회에서 대한올림픽위원회 KOC는 1948년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도록 인준(recognition)됩니다. 그러나 이 인준은 정식 인준이 아니었으며 ‘예비 인준(provisional recognition)’ 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예비 인준이라는 것은 IOC가 각국 국가올림픽위원회 NOC에게 부여하는 인준의 역사에서 첫 번째 사용한 경우가 됩니다. IOC가 특별히 우리나라를 위해 이 전에는 없던 용어까지 만들어가며 인준해 준 것이죠.


사정은 이랬습니다. 총회가 열리는 시기에 한반도에는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합법적인 정부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1948년 동계와 하계올림픽에 나가려면 한 국가의 NOC가 인준되어야한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마지막으로 인준될 수 있는 총회가 이번 스톡홀름 총회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IOC로서는 약간 곤란한 입장이 된 것이죠. 인준해 주자니 이게 정부도 없는 하나의 민족 집단이고, 안 해주자니 조만간 한반도에 정부가 수립되면 이들이 단지 인준을 못 받았다는 이유로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하는 불이익이 생길 수 있었으니까요. 당시 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국제정세라, 그리고 1936년 이후 약 12년 동안 열리지 못한 올림픽이라 IOC도 가능하면 새로운 세계의 평화적인 스포츠 제전을 만들고자 노력하던 차였습니다. 그러니 인준을 거부하는 것은 IOC로서는 부담이었을 것입니다. 결국 양단의 부담을 모두 감안해서 조건부 인준을 주고, 그 명칭을 ‘예비 인준’이라 부르게 됩니다.


‘예비 인준’은 스톡홀름 총회를 마친 후 IOC 부위원장인 브런디지(Brundage)가 KOC 위원장인 여운형에게 보낸 편지에 적시됩니다. 그리고 브런디지가 이원순에게 보낸 편지에도 명확히 합니다. 총회에서 위원들 간에 어떠한 논의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위원들과 IOC가 느끼는 부담을 최소화하고, 이를 KOC에 명확하게 설명한 후 KOC가 인준에 대한 오해를 하지 못하도록 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p166.jpg [사진 3-1] 브런디지가 여운형 KOC 위원장에게 보낸 편지 (1947. 7. 10.)



[사진 3-1]은 브런디지가 여운형에게 1947년 7월 10일 보낸 편지입니다. 이 편지의 말미에 주목할 내용들이 산재합니다. 편지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Recognition of Korea was rather unusual since it is not yet a nation. However, because you have the support of the American authorities (I heard from both the State Department and General Hodge on your behalf), I strongly urged recognition. This recognition, of course, is in a sense provisional and may be reviewed when the Korean Government is established. It will be highly desirable for you to obtain control of amateur sport in the northern zone since only one organization is recognized in a country.’


번역하자면 이렇습니다.


‘한국은 아직 국가가 아니기에 이번 인준은 상당히 예외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국 당국자들(미국무부와 하지 장군)의 지지가 있었기에 제가 강력하게 요청하게 된 것입니다. 이번 인준은 물론 어떤 면에서 예비적이며, 한국 정부가 탄생하면 다시 평가될 것입니다. 한 국가에서는 하나만의 단체가 인준되기에, 북쪽의 아마추어 스포츠에 대한 조정력을 갖기를 매우 희망합니다.’



[사진 3-2] KOC-01 p166 브런디지가 이원순에게.jpg [사진 3-2] 브런디지가 이원순에게 보낸 편지 (1947. 7. 14.)



[사진 3-2]는 브런디지가 이원순에게 1947년 7월 14일에 보낸 편지입니다. 이 편지에서도 여운형에게 보낸 내용처럼 브런디지는 인준의 성격과 조건을 명확하게 규정합니다.


‘Bear in mind this recognition is, of course, only provisional because of the political status of Korea. As a matter of fact, this is the first time recognition has been given to a country before it had its own government. When Korea becomes an independent nation it will be necessary to review the situation. It will, therefore be highly desirable for the existing Korean Olympic Committee and the existing amateur sport governing bodies to include the athletes in Northern Korea as well as the southern section. Naturally there can only be one organization in a country.’


번역은 이렇습니다.


‘한국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이번 인준이 단지 예비적인 것임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사실 이번 인준은 한 국가가 정부를 갖기 이전에 인준이 이루어진 첫 사례입니다. 한국이 독립국이 되면 상황은 재평가될 것입니다. 그러니 현재의 KOC와 아마추어 스포츠 단체들이 남북의 모든 선수들을 포함시킬 수 있기를 매우 희망하고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한 국가에는 하나의 조직만 인정됩니다.’


브런디지의 이 편지들 이전에 여운형은 6월 30일, 이원순은 7월 9일, KOC의 인준을 가능하게 도와준 브런디지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냅니다. 이 두 사람의 편지에 답신으로 브런디지는 예비인준의 성격과 그 조건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오해가 없도록 한 것이죠. 그러나 이 예비인준이라는 용어는 총회 회의록에서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도 IOC 위원들 간의 내부적 합의와 동의로 보입니다. IOC 사무총장인 오토 마이어의 편지에도 예비 인준이란 말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1947년 6월 20일을 KOC가 IOC에 ‘정식 가입’한 날로 적고 있습니다. 말꼬투리를 잡자면 ‘정식’도 아니며, ‘가입’이란 용어는 IOC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승인’도 아니며 ‘회원가입’도 아닙니다. 정확하게는 그냥 ‘recognition’이며, 이를 번역하여 ‘인준’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합당해 보입니다(3-1).




인용 자료


(3-1) 이대택. 체육과학연구, 2018.


[사진 3-1] 브런디지가 여운형에게 보낸 편지 (1947년 7월 10일). Brundage Collection, KOC-01,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사진 3-2] 브런디지가 이원순에게 보낸 편지 (1947년 7월 14일). Brundage Collection, KOC-01,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