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꽃이 피어날 때
목이 늘어난 티셔츠, 오래 입어 무릎이 튀어나온 잠옷 바지, 집게 핀으로 대충 동여맨 머리. 나의 육아 출근룩은 이러하다. 이렇게 후줄근한 엄마인데도 아이는 내 품을 계속 파고든다. 아이가 엄마에게 보내주는 절대적인 사랑과 신뢰 덕분일까. 모양새가 만족스럽지 못한 출근룩임에도 나는 매일 자부심을 갖고 아이와의 하루를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득 속상해지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어느 날,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는데 너무도 추레한 내가 있었다. 잠을 못 자니 피부는 푸석해지고, 다크서클은 볼까지 흘러내려 얼굴색에 녹아든 듯 보였다. 후줄근한 옷차림과 한동안 미용실을 못 가 지저분해진 머리까지, 어딘지 모르게 초라해 보였다. 평소에는 열심히 하루를 보낸 전투의 흔적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그 순간은 나의 초라한 모습만큼 나라는 사람도 도태되고 빛을 잃어가지는 않을까 하는 서글픈 걱정이 밀려왔다.
출산과 육아를 겪으며, 나는 변했다. 그 변화들 중에는 아름답고 숭고한 변화들도 있었지만 아름답지 않고 불편한 변화들도 있었다. 산후탈모로 머리가 빠지기 시작하며, 풍성했던 머리들이 듬성듬성해지기 시작했고, 부풀었다 쪼그라든 뱃가죽은 축 쳐졌다. 외모를 꾸밀 여유가 없으니 편한 옷차림에 화장기 없는 얼굴이 익숙해졌다. 불편하지만 예쁜 옷을 꺼내 입는 일, 화장대에 앉아 화장을 하고 머리를 손질하는 일들은 희미한 과거가 되었다.
그럼에도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은 남아있다. 내 외모를 단장할 수는 없으니 다른 것을 예쁘게 꾸며본다. 종종 예쁜 행주로 식탁을 꾸미기도 하고, 새 커튼을 달아보며 만족감을 느낀다. 외출할 때 내 옷은 신경 못써도 아이 옷은 예쁘게 입힌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름다움이 간절해질 땐, 예쁜 음식을 먹는다. 겉치장을 할 수는 없어도, 아름다운 음식을 먹으면 내 안에 아름다움이 채워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니까.
그날도 아이의 낮잠 시간을 틈타, 예쁜 음식을 먹어보고 싶어졌다. 냉장고를 열자 무화과가 보였다. 마침 사다 놓았던 빵도 있었기에, 무화과 샌드위치로 메뉴를 정했다. 프라이팬을 꺼내 달군 뒤, 버터 한 조각을 올렸다. 프라이팬 위에서 네모난 버터가 둥그런 모양이 되고, 점점 퍼져나갔다. 녹은 버터 위에 빵 한 조각을 올리니 버터향이 빵에 스며들며, 온 주방에 고소한 향이 퍼졌다. 빵이 바삭해질 때까지 구워준 뒤, 빵 위에 크림치즈를 펴 발라주었다. 그리고 무화과를 씻어주었다. 무화과는 너무 세게 씻거나 물에 담그지 않는다. 흐르는 물에 살살 씻어준 뒤, 도마에서 조각내어 썰어주었다. 크림치즈로 펴 바른 빵 위에 무화과 조각들을 올리니, 간단하지만 풍성한 샌드위치가 완성되었다.
무화과를 정말 좋아하는 나는, 무화과 철이 오면 늘 설렌다. 무화과는 9~11월쯤, 가을이 제철이다. 선선하고 쾌청한 공기, 알록달록한 단풍이 보이기 시작하면 마트에도 무화과가 보이기 시작한다. 길가마다 붉고 화려한 빛깔들이 놓이는 가을처럼 무화과의 색깔도 아름답다. 자줏빛 혹은 연둣빛이나 검붉은 색으로도 익는 껍질은 몽환적인 데다가, 반으로 가르면 분홍빛의 작은 구슬들이 차르르 수놓아진 과육이 드러난다. 콧속으로 스며드는 달콤하면서도 묵직한 향은 덤이다. 그 향기와 함께, 무화과를 입에 넣으면 부드러운 과육이 스르륵 녹아내린다. 무화과를 즐기는 순간은 가을의 아름다움을 집어삼키는 것 같다.
그런 무화과가 부드러운 크림치즈, 버터에 구운 빵과 만나니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맛이 되었다. 커피 한 잔을 곁들이며 나만의 시간을 만끽했다. 식탁 위로 햇살이 쏟아지고, 열어 놓은 창문으로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왔다. 어쩌면 아름다움은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이렇게 맛으로, 체온으로, 소리로 느끼는 것 아닐까.
무화과는 특이하게도 과육 자체가 꽃이라고 한다. 보통의 과일은 꽃이 피고 열매를 맺지만, 무화과는 다르다. 꽃이 피지 않고 열매를 맺어 ‘무화과(無花果)‘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은 꽃이 열매 안으로 피는 것이어서 분홍빛 과육 자체가 꽃이 되는 것이다.
문득 요즘의 나도 이 무화과와 같지 않을까 생각했다. 겉으로는 추레해도 보이지 않는 꽃이 어딘가에서 피어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거울 속의 나를 보고 속상했지만, 거울이 아닌 다른 것들을 들여다보면 사실 내 삶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요즘 나는 아이와 눈을 맞추며 서로의 눈코입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논다. 이제 막 ‘눈, 코, 입’을 배워가는 아이는 조그만 손가락으로 내 눈, 코, 입을 매만지며 신나게 웃는다. 내 인생에 이런 순간만큼 빛나는 시간이 또 있을까. 마음 안에 사랑이 쌓이는 시간, 따스한 웃음으로 교감하는 시간, 그리고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이 샘솟는 시간. 지금 나는 마음 안에서 꽃이 피고 있다.
누구에게나 살면서 무화과 같은 시절이 있을 것이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그래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나만이 온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이 가득한 시절. 보이지 않는 꽃을 위해 하루하루 애쓰는 시절. 나는 그 시절이 삶을 더 풍성하게 가꿔주리라 믿는다. 가을날의 향긋한 무화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