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뒷모습
오전 9시, 알람이 울린다. 나는 몽롱한 상태로 머리맡에 놓인 휴대폰을 찾는다. 화면을 만지며 알람을 끄고, 새로 온 메신저와 sns, 오늘의 날씨 따위를 들여다본다. 겨우 침대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나오니 식탁 위에 놓인 접시 2개가 보인다. 접시 하나에는 사과 대여섯 조각이, 또 다른 접시에는 삶은 계란 하나가 놓여 있다. 그 옆에는 쪽지 하나가 보인다.
‘냉장고에 국이랑 밥도 있으니 꺼내서 데워먹으렴. 오늘도 파이팅!‘
아빠의 수려하고 커다란 필체가 작은 메모지를 가득 채운다. 나는 잠도 덜 깬 상태로 식탁 앞에 앉아 사과 한 조각을 베어문다. 사과를 사각사각 씹다가 정수기에서 미온수 한 잔을 내린다. 사과와 함께 너무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물 한 잔을 먹고 나니 계란이 보인다. 계란을 집어 식탁에 ’탁’ 하고 내리친다. 그 소리에 또 한 번 정신이 든다. 껍질을 벗겨 한입 먹으니 계란의 고소함이 입안을 감싼다. 비로소 아침이 시작됐다. 젊은 시절의 나는 그렇게 하루를 시작했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때까지만 해도, 내 아침식사는 나의 손을 거치지 않았다. 나는 알람을 듣고 잘 일어나 식탁에 앉기만 하면 됐다. 그때는 그것조차 귀찮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주 간단하게 아침의 허기짐을 달랠 수 있던 안락한 시절이었다.
당시 우리 집의 아침을 여는 사람은 아버지였다. 한 때는 엄마가 먼저 일어나 가족들의 아침식사를 챙겼었다. 그러나 워킹맘인 데다가 아침잠이 많은 엄마를 대신해, 점점 아빠가 아침식사의 당번 역할을 하게 되었다.
아빠는 우리 가족의 아침 당번으로서 제격인 분이었다. 왜냐하면 늘 자신의 식사를 잘 챙기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끼니를 잘 챙길 수 있으려면, 나 자신부터 잘 챙길 줄 알아야 한다. 아빠는 스스로에게 아침을 대접하는 법을 알았다. 엄마가 챙겨주지 못하던 날에도 스스로 아침을 차려드셨으니까. 선식을 타먹거나, 든든한 우유나 두유 한 잔을 마시기도 했으며, 따뜻한 누룽지를 끓여 새우젓을 곁들여 먹기도 했다. “한번 지나간 끼니는 되돌아오지 않아.”라는 말을 자주 내뱉던 아빠답게, 아빠는 매일 아침 고요한 주방에서 자신의 허기를 달래셨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아빠는 점점 더 일찍 일어났고, 더 오래 아침을 만들었다. 자신의 아침을 넘어 가족들 것까지 요리했다. 내가 일어났을 땐, 아빠는 없고 아빠가 차려준 아침만이 놓여있었다. 그중에서도 삶은 계란과 사과는 거의 매일 식탁에 놓여있었다. 사과는 껍질채, 계란은 반숙으로. 그리고 종종 다른 것들도 함께 놓여있었다. 푹 쪄진 고구마나 단호박, 잼을 바른 빵이나 달달한 떡, 시리얼이나 수프, 밥과 전날 끓여 놓은 국 등. 내게 놓여진 삶은 계란과 사과는, 그리고 모든 아침식사들은 그렇게 당연한 것이었다. 매일 아침마다 문 앞에 놓이는 신문처럼, 매일 같은 시간 울리는 알람처럼, 그리고 하루를 밝히며 날마다 떠오르는 태양처럼.
한 아이의 엄마이자, 누군가의 아내가 된 지금 나는 그 당연한 것을 위해 매일 아침마다 몸을 일으킨다. 휴대폰 알람대신 아이의 꼬물거리는 손가락의 감촉이 나를 깨운다. 눈을 뜨면 동그란 아이의 눈이 ‘엄마 빨리 일어나.’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아이를 한 번 꼭 안아주고, 옆에서 자고 있는 남편을 깨운다. 그리고 지저분한 머리를 하나로 동여매고 부엌으로 나간다. 냉장고를 열어 계란과 사과를 꺼낸다. 물을 올려 계란을 삶고, 사과는 깨끗이 씻어 껍질채 깎는다. 아이의 아침은 조금 다르게 준비하지만, 남편과 나의 고정메뉴는 삶은 계란과 사과이다. 내게 당연스럽게 놓였던 아침 식사가 이제는 나의 몫이 되었다.
십수 년 간 먹어본 바에 의하면, 삶은 계란과 사과는 아침 메뉴로 좋은 선택이다. 바쁜 아침시간에 빠르게 준비할 수 있고, 영양적으로도 좋다. 단백질과 비타민, 탄수화물을 적절히 먹어줄 수도 있다. 무엇보다 크게 질리지 않는다. 가끔 지겹다며 아빠에게 투정을 부리기도 했었지만, 결국 나 역시도 가장 애용하는 아침메뉴가 되었다. 종종 지겨워지거나 색다른 게 먹고 싶을 땐 약간의 변화를 준다. 요즘 자주 먹는 방법인데, 계란 위에 들기름과 후추를 뿌려주면 더 고급스러운 맛이 난다. 그리고 사과에는 시나몬 가루를 뿌려먹거나, 땅콩버터를 곁들여 먹기도 한다. 사과의 새콤달콤한 맛에 향긋함과 고소함 같은 여러 향이 곁들여진다.
어느새 나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누군가에게 아침을 차려주는 사람이 되었다. 회사에서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있던 날에도 삶은 계란과 두유 한 잔으로 속을 가득 채웠고, 마음이 울적했던 어느 날 아침에는 상큼 달달한 사과를 한가득 썰어 먹었다. 육아로 피곤했던 날 아침에도 부엌에서 사각사각, 세 식구의 사과 씹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과 다투었던 다음 날 아침에도 무심하게 계란을 삶아 식탁에 올려놓았다. 그런 매일을 지나오며 느꼈다. 하루의 시작을 대하는 마음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조금은 경건하면서도 의연한 마음, 무엇보다 나를 가장 소중히 하는 마음과 그것을 토대로 남을 사랑하는 마음. 아빠는 아침마다 그 마음들을 내게 새겨주었다. 조금은 무뚝뚝하고 거리감이 느껴졌던 아빠이지만, 아빠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늘 그 마음을 전하고 있었다.
남편이 출근을 하고 아이가 낮잠에 들면, 나는 식탁에 앉는다. 아이를 돌보느라 미처 먹지 못했던 내 몫의 삶은 계란과 사과가 남아있다. 그것들을 먹으며, 주방의 고요함에 몸을 맡긴다. 그제야 나는 떠올려본다. 아빠가 차려주었던 삶은 계란과 사과. 그 접시들이 놓이기까지 아빠는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해가 채 뜨기도 전인 캄캄한 새벽, 아빠는 눈을 뜨고 집 앞에 놓인 신문을 들여왔을 것이다. 신문을 읽고 뉴스도 잠시 보다가, 가스불에 물을 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사과 하나를 꺼내 껍질을 깨끗이 씻고, 8조각으로 썰었을 것이다. 조용한 집안, 어둑한 작은 주방에서는 보글보글 물이 끓는 소리와 사각사각 사과 깎는 소리만이 들렸을 것이다. 아빠는 형광등 불빛 아래서 여느 날과 같이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 아빠의 뒷모습이 이제서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