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넓히는 연습
깜깜한 어둠을 뚫고 두어 시간쯤 달리니 집이 보이기 시작했다. 운전대를 잡은 남편의 뒷모습에는 피로가 묻어있고, 옆에서 좁은 카시트에 앉아있는 아이는 빨리 벗어나고 싶은지 계속 칭얼거렸다. 아이에게 과자 하나를 쥐어주고, 창밖을 본다. 어둠으로 뒤덮인 그림 위에 반짝이는 네온사인들이 군데군데 색칠되어 있다. 아이는 불빛들을 보며, 손으로 ‘반짝반짝 작은 별’ 율동을 시작한다. 엄마의 복잡하고 고된 마음은 아무렴 괜찮다는 듯이.
가족모임이나 명절이 끝나고 귀가하는 날이면 늘 어느 정도의 피로감이 쌓인다. 우리는 양가 부모님들이 모두 타지에 계셔서, 부모님들을 뵈러 갈 때면 장거리를 이동한다. 한 살배기 아이를 데리고 차를 오래 타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귀염둥이 손주를 데리고 찾아뵐 때마다 마냥 행복해하시는 부모님들을 보면 고된 귀경길의 피로도 감수할만하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손주의 움직임과 재롱을 구경하고, 자식들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부모님들의 얼굴에는 또 다른 생기가 채워진다.
그리고 자식들이 돌아갈 쯤이 되면, 아쉬움을 달래기라도 하듯 우리의 양손에 무언가를 가득 쥐어주신다. 새로 담근 김치, 각종 밑반찬과 불고기, 제철과일 등. 그것들이 반찬통과 비닐, 쇼핑백에 담겨 커다란 음식 보따리가 된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보따리는 ‘만두‘이다.
친정에서는 내가 어릴 적부터 명절이면 친척들끼리 둘러앉아 만두를 빚었다. 엄마가 꺼내오는 커다란 양푼은 명절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커다란 양푼에 갖은 재료들이 다져지고 합쳐져 풍성한 만두소가 되었다. 결혼한 후부터 나는 함께 만두를 빚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의 손으로 빚어진 각양각색의 만두를 보면 나도 만두를 빚는 그 자리에 있는 것만 같았다. 엄마는 온갖 모양들 중 예쁜 것들을 골라 비닐봉지에 싸주셨다. 또 결혼 후에 달라진 점이라 하면, 시어머니표 손만두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가족모임이 끝난 후 어머님은 커다란 반찬통 하나를 내미셨다. 남은 신김치로 아버님과 둘이 만두를 빚으셨다면서. 두 분이 소소하게 빚은 것 치고 꽤 많은 양을 주셔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김치를 넣은 만두답게 빨간 빛깔이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부모님들께 받아온 만두를 냉동실에 넣을 때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냉동실에는 이미 시판 냉동만두가 있지만, 집에서 직접 만드는 ’손만두’의 맛은 그것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부드러운 만두피와 두부의 고소함이 어우러지며, 짜지 않고 담백해서 계속 들어가는 맛이기 때문이다. 김치라도 넣으면 그 담백함에 칼칼함까지 더해지니, 시판만두와 비교가 될까. 무엇보다 나는 만두가 꽤나 번거로운 음식이란 걸 안다. 만두소를 만들고 만두를 빚는 그 긴 시간을 보아왔기에, 만두에는 여러 재료가 들어가는 만큼 다양한 노력과 시간이 들어감을 알고 있다.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 맛은 어떤 기술도 따라올 수 없다.
냉동실에 들어갔던 만두는, 다음 날이면 다시 주방으로 나온다. 쌓여있는 피로와 기름진 식사로 무거워진 몸, 이럴 땐 간단하면서도 담백한 요리가 필요하다. 나는 냄비에 물을 올리고 다시마 한 장, 무 몇 조각을 넣어 끓인다. 채수 맛이 충분히 우러나면, 만두를 넣고 다진 마늘, 대파를 썰어넣는다. 국간장으로 간을 하고 계란 하나를 풀어 둘러주면 손쉽게 만둣국 완성된다.
풍성하고 속이 꽉 찬 만두를 쪼개어, 따뜻한 국물을 적셔 먹으니 온몸이 노곤해진다. 따뜻한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처럼, 피로감이 빠져나간다. 평온한 맛을 느끼면서 생각에 잠긴다. 결혼을 하고 나서, 친정이나 시댁을 가는 일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집으로 돌아올 때면 남겨지는 이 피로감은 무엇인지 말이다.
처음 남편과 함께 양가에 인사를 드리러 갈 때가 생각난다. 내가 결혼할 사람과 부모님의 만남이 잘 이루어질 수 있을까 마음 졸이며 긴장이 됐다. 그날 어색한 식사를 하며 느꼈다. 늘 편한 마음으로 쉬러 가는 곳이었던 친정은 더 이상 내게 그런 곳이 아니게 되었다는 걸. 시가에 처음 인사드리러 갈 때는 오죽했을까. ‘남한테 어떻게 보이느냐가 뭐가 중요해‘라며 마인드컨트롤을 하고 살아가던 나도, 그날만큼은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며, 그런 긴장감은 점점 사라지지만 또 다른 마음들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다.
친정에 갈 때면, 그동안에는 늘 익숙했던 것들이 낯설게 다가왔다. 이전에 찍은 가족사진, 내가 사용하던 수저, 어릴 때 쓰던 이불과 베개. 그런 것들이 점점 낯설어지면서 항상 곁에 있던 무언가가 떠나가듯 허전해졌다. 시가에 가면, 새로운 분위기와 가족 안의 또 다른 문화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대화 중에 자주 이야기되는 주제와 농담들, 주로 먹는 밑반찬들도 내가 그동안 겪어온 것과는 달랐다. 집 안의 물건들은 모두 세월이 묻어있음에도 내게는 새로운 것들이었다. 그럴 때면 이질감이 들기도,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것 같아 두렵기도 했다. 복잡하고 오묘한 마음들을 느끼며, 이전에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던 ‘어른의 세계’가 조금씩 와닿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그 세계에 이제 막 발을 들인 나 자신을 아이 다루듯 조심스럽게 대하고자 한다. 어려운 감정이 들 때면, 그것을 최대한 인정해주려 한다. ‘그런 것이 두려웠구나, 그래서 낯설고 힘들었구나.’라고 마음을 수용해주는 말들을 내게 건넨다. 그러다 보면, 어려운 감정도 외면하기보다는 내 일부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여러 감정들은 복잡하지만, 잘 버무려지고, 품어진다. 나라는 사람 안에서.
내게 당연스레 주어졌던 가족이 아닌, 새로운 가족을 꾸려가는 일은 쉽지 않다. 남편도, 아이도, 양가 부모님과 가족들 모두. 결혼을 선택한 이상, 마음의 울타리를 점점 넓혀가야 한다고 느낀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나 자신부터 잘 안아주는 것이다. 낯선 무언가를 품기 이전에, 먼저 내 안의 낯선 감정들부터 잘 품어주고자 한다.
만두 안에는 다양한 재료들이 들어간다. 두부, 고기, 양파, 숙주, 김치 등. 그 모든 것들을 함께 먹을 때 느껴지는 깊은 맛이 아마 만두의 핵심일 것이다. 무엇보다 쫄깃하고 탄탄한 만두피가 그것들을 모두 감싸고 있으니, 어떤 다양한 재료들도 함께 어우러질 수 있다. 나 역시 다양한 감정과 여러 사람들을 품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많은 것이 어우러질 때 내 삶은 더 깊어지지 않을까. 나만의 탄탄한 만두피를 만들고 싶다. 그 만두피로 많은 것을 감싸 안고 싶다. 그렇게 내 마음의 울타리가 넓어진다면 어떨까.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여럿이 다 같이 둘러앉아 만두를 빚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건 깊은 어둠 속 불빛처럼, 무거운 피로를 달래는 만둣국처럼, 나를 평온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