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어린아이를 위해
아이의 낮잠 시간, 설거지를 하며 싱크대 앞에 있는 창문을 바라봤다. 파란 하늘, 그 위에는 흩뿌려진 솜사탕 같은 구름이 보인다. 그리고 나는 그 맑은 하늘이 괜스레 짜증 났다. 육아를 하다 보면 그런 날이 있다. 몸도 마음도 힘듦이 쌓여 터져 버릴 것 같은 날. 그런 날 이렇게 예쁜 하늘을 보며 설거지를 하고 있으니, 고무장갑을 벗어던지고 훌훌 날아가고 싶어진다.
설거지를 끝내고 휴대폰을 보니 엄마에게 메신저가 와있었다. ‘뭐해?’ 메신저를 보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가 배우는 라인댄스 이야기, 요즘 건강 이야기, 아빠의 텃밭 근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엄마가 가장 궁금해하는 손주의 근황도 빼먹을 수 없는 주제였다. ”00는 뭐해? 낮잠 자고 있니?”를 시작으로, 얼마 전 내가 보낸 아이 사진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했다. “그게 뭐 하고 있는 거야? 문화센터에서 찍은 거니?” 사진 하나에도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은지, 엄마는 아이의 사소한 변화마다 관심을 보였다. 그러다 엄마가 말했다. “00이 점심 메뉴는 뭐야? 맛있는 걸로 챙겨줘.”
순간 무엇에 화가 났던 걸까. 나는 엄마에게 쏘아붙였다. “잘 챙겨 먹이고 있으니까 걱정 마. 맨날 장난치느라 제대로 안 먹어서 그렇지. 근데 딸이 힘들게 해 먹이는 건 안 보이지?” 순간 엄마의 당황한 표정 그려졌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엄마의 말. “너 고생하는 거 알지. 아이 밥 해먹이랴, 살림하랴. 힘들지?” 엄마의 위로에도 대충 대답해 버리고 전화를 끊었다. 집 안은 고요했다. 정적 속에 몸을 담그듯 소파에 누워, 찜찜한 마음을 삼켰다.
이내 아이가 깨는 소리와 함께 정적은 깨졌다. 아이 점심을 먹이고 난 뒤, 아이와 함께 집 근처에 자주 가던 베이커리카페로 향했다. 카페에서 차가운 아메리카노와 달달한 빵을 시켜놓고, 전망이 좋은 자리에 앉았다. 옆에 앉은 아이에게 우유를 쥐어주고, 나는 커피 한 모금을 들이켰다. 시원한 커피가 속을 개운하게 닦아주는 것 같았다. 그리곤 달콤한 빵 한 조각을 먹었다. 진한 달달함과 함께 기분 좋은 무언가가 가득 채워졌다. 그렇게 쓴맛과 단맛의 기분 좋은 이중주로 짜증을 가라앉히고, 조금의 생기를 되찾았다.
사실, 이렇게 간단하게 디저트를 먹으면서 회복할 수 있는 스트레스라면 별게 아니다. 갖고 있을 땐 무겁고 힘들다가도, 털어내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다. 한결 기분이 나아지니, 아까 엄마에게 짜증을 부렸던 게 생각났다. 괜히 미안하고 머쓱했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어도, 여전히 난 어린애 같을 때가 있구나 싶었다. 괜히 아무 상관없는 엄마에게 짜증을 부리며, 내 못난 감정을 엄마에게 툭 던져버리는 행동. 그건 감정에 미숙하던 어린아이 때, 혹은 한창 예민하던 사춘기 시절에나 하던 행동이 아니었나.
순간, 옆에서 우유를 마시고 있는 아이를 바라봤다. 아이는 동그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조그만 앞니로 빨대를 오물오물 깨물었다. 순간, 어리숙한 내가 이 어린아이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갓 17개월이 된 이 아이가 얌전히 식탁에 앉아 집중해서 밥을 먹어주길 바랐다. 자기 마음대로 안된다고 울며 떼쓰지 않기를 바랐고, 안아달라고 보채는 행동도 때론 짜증이 났다. 그게 아이가 보내는 어떠한 신호라는 것도 잊어버린 채.
너도 힘들었겠구나. 그 한 마디가 툭 내뱉어졌다. 나는 커피를 마시는 어른이고, 너는 우유를 마시는 아기인데. 내가 어른답게 너를 감싸 안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몰려왔다. 그리고 그제야 아이의 신호가 느껴졌다. 아이는 매일 부지런히 자라나며 성장통을 겪었을 것이다. 몸이 자라나는 동안 팔다리는 쿡쿡 쑤시고 아팠을 테고, 생각이 자라나면서 하고 싶은 게 많아지지만, 못하는 것이 더 많아 답답했을 것이다. 그 성장통이 얼마나 아프고 고되었을까. 나는 어느 순간부터 아이는 말썽 부리고, 투정 부리는 게 당연하다는 걸 잊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미안한 마음을 담아 아이에게도 달콤한 시간을 선물해 주기로 결심했다. 메뉴는 시금치바나나 팬케이크였다. 바나나는 달콤하고 부드러워 아이가 좋아하는 과일 중 하나이다. 바나나를 큰 조각으로 잘라 믹서기에 넣고, 깨끗이 씻은 시금치도 잘게 잘라 넣었다. 여기에 오트밀 가루와 날계란 한 개를 더해주고, 함께 갈아주면 반죽이 완성된다. 팬에 기름이나 버터를 둘러주고, 반죽을 편평하게 올려 약불에서 구워주면 팬케이크가 완성된다.
초록색의 팬케이크는 모양새는 별로여도, 맛은 달콤하고 부드럽다. 영양소가 풍부한 시금치가 들어가고, 설탕 없이 바나나로 단맛을 내니 아이에게도 부담 없이 만들어줄 수 있다. 단맛이 썩 건강한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엄마가 마음 놓고 줄 수 있는 달콤한 시간이 아닌가. 아이는 팬케이크를 맛있게 먹어주었다. 그릇을 싹 비울 정도로. 비워진 그릇을 깨끗이 설거지하며 내 마음도 조금은 상쾌해졌음을 느꼈다.
달콤함은 때론 깊은 휴식을 준다. 우는 어린아이에게 사탕을 쥐어주는 것처럼, 아프고 힘든 시간이 지나고 난 뒤 맛보는 달콤함은 그 아픔마저 잊게 해 준다. 그리고 그건 마치 엄마의 따뜻한 품 같다. 어떤 모습으로도 그냥 가서 푹 안길 수 있는, 못난 어리광도 부릴 수 있는 포근한 품. 우리 아이에게는 그런 품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에게도, 우리 엄마에게도 필요하다. 우리는 그렇게 마음 한편에 남아있는 응석받이 아기를 어르고 달래며, 점점 어른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