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깨버섯덮밥

지친 나를 위한, 묵직한 충전

by 오솔


도로를 가득 채운 자동차들은 일렬로 앞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일정한 엔진소리들 틈으로 조급한 누군가의 경적소리가 뒤섞인다. 높은 오피스텔 건물들이 빼곡히 길가를 메우고 있고, 온갖 반짝이는 상가 간판들이 보인다. 빈틈없는 도시의 풍경,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나의 삶도 비슷했다. 처음 취직한 회사. 그 안에서 서툰 사회초년생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매일 출퇴근을 반복했다. 몇 년이 지나도 나는 복잡한 도심의 풍경이 익숙해지지 않았다. 건조한 눈빛으로 하루하루를 맞이하는 게 점점 힘들어지자, 잠시 쉬어가야겠다는 마음으로 퇴사를 결정했다.


퇴사를 하고, 나는 본격적으로 집밥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아마 몇 년이 지난 지금, 가정을 꾸리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누군가를 먹일 수 있게 된 건 여유롭게 집밥을 해 먹기 시작하던 그 시간이 있어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아침에는 과일과 계란, 따뜻한 수프로 속을 채웠고, 점심과 저녁에는 덮밥이나 찌개, 국수나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백수가 되어 시간이 많아지니 시간이 많이 걸리는 요리도 해보기 시작했다. 그동안에는 맛보지 못했던 식재료들도 새롭게 하나씩 요리해서 먹어보았다. 주방에서 조용히 요리를 하고, 혼자서 차분히 식사를 하던 그 몇 달은 내게 특별했다. 늘 해야 할 일로 가득 찼던 삶에서 처음으로 나에게 여유를 선물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때 처음 성공했던 요리가 바로 ‘들깨버섯덮밥’이다. 아직 요리를 해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대부분의 요리가 특별히 맛있다기보단 먹을만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들깨버섯덮밥을 아주 맛있게 먹은 이후로, 요리에 자신감이 생겨 더 꾸준히 집밥을 해 먹을 수 있었다.


이 음식을 요리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아주 지쳐있었다. 왠지 모르게 피곤하고 무기력했으며, 몸도 마음도 축 처지던 날이었다. 내가 휴대폰의 배터리라면, 한 3%만의 여유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대충 밖에서 사 먹을까 하다가, 그 남아있는 3%로 요리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내겐 지친 에너지를 깊이 채워줄 한 끼가 필요했다. 순간 묵직하고 고소한 맛의 ‘들깨’가 생각났다. 그리고 채소 중에서는 그것과 어울릴만한 ‘버섯’이 생각났다. 곧장 나는 두 개를 이용해 요리를 시작했다.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새송이버섯과 표고버섯을 볶아주었다. 두 가지 버섯을 함께 사용하는 이유는 버섯의 풍미를 최대한 살리기 위함이다. 버섯이 어느 정도 익은 뒤, 양파와 청경채를 넣어 같이 볶아주었다. 간장과 약간의 설탕으로 간을 해준 뒤, 물과 채수를 넣었다. 졸아들 때까지 익혀주다가 이 요리의 핵심인 들깨가루를 넣어주었다. 밥에 올리고, 마무리로 들기름을 살짝 둘러주니 은은한 향이 코끝을 찔렀다.



첫 입을 먹자마자 버섯과 들깨의 조합에 감탄했다. 아주 간단한 요리법이라서 기대하지 않았는데, 맛은 고급스러운 한식당에 온 것만 같았다. 쫄깃하게 버섯이 씹히고, 씹을 때마다 고소한 들깨향이 퍼졌다. 특히 표고버섯의 향과 들깨가 어우러지니, 깊고 진한 맛이 입안에 계속 맴돌았다. 강렬한 향이 느껴져서인지 휴대폰과 tv 없이도 식사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 시간에 온전히 몰입하면서 나를 짓눌렀던 피로감은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피로가 지나간 자리는 고요했다. 고요 속에서 새로운 이파리 하나가 피어나는 듯했다. 그건 나를 위한 위로이자 격려였다. 앞만 보고 달리던 내가 잠시 멈추어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찰나였다. 그리고 난 그것이 ‘회복되는 과정’이었다는 걸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깨달았다.


그날 이후로, 나에게 ‘들깨 요리’는 일명 소울 푸드가 되었다. 심신이 지치거나,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 무언가 든든한 한 끼를 먹고 싶을 때면 들깨 요리가 생각난다. 들깨를 넣은 국물은 속을 따뜻하게 채워준다. 구수하고 쫄깃한 버섯들깨탕, 담백한 감자와 당근을 썰어 넣은 채소들깨탕, 부드러운 식감에 고소한 향이 더해진 순두부 들깨탕은 종종 맛있게 끓여 먹는 국물요리들이다. 겨울이 되면 달큰한 무가 제철이기에 들깨무나물을 볶아먹는다. 무나물을 한가득 볶아 따뜻한 밥 위에 올려 먹으면 자연스레 덮밥으로도 먹을 수 있다. 들깨는 생각보다 향이 강해서, 특유의 묵직하면서 구수한 매력이 요리에서 극대화된다. 기름진 고기요리나 맵고 칼칼한 음식에서는 찾을 수 없는 매력이다. 삼계탕이나 장어 같은 보양식보다 담백해서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나는 종종 들깨를 먹으며 스스로를 충전했다. 그러면서 알게 됐다. 지친 순간, 내게 힘을 주는 것은 풍성한 고기요리도, 자극적인 매운 음식도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내게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필요했다. 복잡한 삶에 피곤해질수록, 핵심을 관통할 수 있는 묵직한 한방이 필요했다. 단순하면서도 묵직한 맛. 들깨요리는 특유의 향만으로도 충분하기에 그런 맛과 닮아있다.


어느 순간 여유가 필요함을 깨닫고 결정한 퇴사, 겨우 남아있는 3%의 에너지로 요리를 하겠다는 결심. 어쩌면 나는 지친 순간마다 들깨처럼 묵직한 한방을 내게 선물해 준 것 같다. 좀 더 단순해지길, 나다운 본질로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진심 어린 회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요즘도 들깨요리를 먹으면 그때의 내가 떠오른다. 그러다 구수한 향이 몸을 감싸면 이내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 새로운 이파리가 돋아나듯이, 그렇게 많은 것이 흘러가고 새로운 힘이 채워지듯 말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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