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이 만들어내는 깊은 맛
“당신과 나는 참 다른 거 같아”
우리 부부는 사이에는 종종 이런 말이 오간다. 그건 때론 날카로운 말이 되기도 하고, 따뜻한 말이 되기도 한다. 냉탕과 온탕 사이를 오가는 관계. 냉정과 열정을 사이를 움직이는 시간. 요즘 우리는 그런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우리의 관계가 차가웠을 때, 그 말은 상대방을 향한 가시가 되었다. 얼마 전 우리는 부부싸움을 했다. 일상을 함께하고, 아이까지 키우다 보면 부부싸움은 꽤나 흔한 일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그날은 평소보다 서로의 마음에 응어리가 깊게 남았다. 싸움의 시작은 별거 아닌 한 마디였으나, 그 말이 뒤틀리고 변질되어 상대방의 마음에 박혔다. 내 마음에 꽂힌 말도 그랬다. 나는 그 말을 곱씹으며, 남편에게 서운함을 느꼈고 화를 냈다. 남편도 그랬다. 나는 가볍게 던진 말인데 그는 벌컥 화를 냈고, 왜 그런 것에 화를 낼까 싶어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말했다.
“자기는 참 나랑 달라.”
이 싸움이 희한했던 건, 나와 남편은 모두 상대방의 어떤 말 한마디에 꽂혔다는 것이다. 나는 남편이, 남편은 내가 했던 말 한 조각을 주워 담았다. 그리고 각자의 마음 안에서 퍼즐을 맞췄다. 못난 방식의 퍼즐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해서 그 말에 상처를 입었다. 사랑하는 상대를 향한 분노는 나를 향하는 분노와 같다. 나에게 화내지 못하는 사람은 상대에게 화를 내고, 상대에게 화를 내지 못하는 사람은 스스로에게 화를 낸다. 우리의 갈등이 고조되던 한동안, 나는 나와 남편 모두에게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그리고 부정적인 감정이 나를 휘감을 땐, 그 어떤 이성적인 판단도 쓸모가 없어졌다.
마음이 힘들 때는 요리를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마음이 힘들수록 요리를 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무엇보다 아이를 먹이고, 가족을 먹이기 위해서는 숨 쉬듯 해야 하는 일이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지내던 어느 날, 아침메뉴로 ‘아스파라거스 감자스프’를 만들어 보았다. 아이 유아식 요리책에 나오는 요리인데, 마침 냉장고에 재료가 있었다. 어떤 맛이 날지 궁금한 마음으로 재료들을 꺼냈다. 메인재료인 아스파라거스와 감자를 씻어 도마에 올려놓았다.
문득, 도마 위에 놓인 두 채소를 보니 참 달라 보였다. 뾰족한 아스파라거스와 둥글둥글한 감자. 곰곰이 생각해 보니 모양만 이질적인 것이 아니었다. 아스파라거스는 푹 익히면 부드럽긴 하지만 식감이 아삭한 편이다. 특유의 향이 있는데 약간의 풋내 같기도, 흙냄새 같기도 하다. 반면에 감자는 푹 익히면 으깨질 만큼 부드럽고 뭉근하다. 특별한 향이 도드라지기보다 은은하게 구수한 향과 맛이 난다. 너무도 다른 이 두 채소가 만나 스프가 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호기심 섞인 걱정을 뒤로한 채, 요리를 이어나갔다. 손질한 아스파라거스와 감자를 삶아서 익혀주었다. 감자를 먼저 삶고, 아스파라거스를 뒤에 넣어주니 시간이 딱 맞았다. 채소가 익고 난 후, 프라이팬에 올리브오일을 두르고, 채 썬 양파를 볶았다. 거기에 익힌 감자와 아스파라거스를 넣고 같이 볶아주었다. 볶아진 채소들을 우유와 함께 믹서에 갈아준 뒤, 냄비로 옮겨 담아 충분히 끓여줬다. 치즈를 넣어 풍미를 더하고, 약간의 소금으로 간을 해주었다. 되직한 스프의 점성이 나올 때까지 계속 저으면서 끓여주었다.
긴 조리시간을 지나 우리의 식탁에 드디어 스프가 올라왔다. 그리고 스프를 처음 맛보던 순간, 나의 걱정이 기우였음을 알게 되었다. 아스파라거스의 향과 감자의 고소함. 그 두 채소의 향과 맛이 모두 다 느껴지면서 부드럽게 어우러졌다. 어느 한 가지 맛이 도드라진다는 느낌도 없었다. 아스파라거스는 그것대로, 감자도 그것대로, 향이 살아있지만 너무도 잘 어울렸다. 남편과 아이의 접시가 깨끗하게 비워진 것을 보며, 모두가 이 맛을 즐겼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날 밤, 남편과 나는 맥주 한 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나는 내가 남편의 말 한마디를 어떻게 주워 담고, 어떤 퍼즐을 맞추었는지를 솔직하게 말했다. 결국 중요한 건, 그 말이 아니라 말을 해석하는 나의 방식이었다. 그걸 인정하고 남편에게 말하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지만, 그게 우리에게 꼭 필요한 과정임을 알았다. 그리고 남편도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나의 말이 어떻게 박혔고, 왜 그렇게 감정이 상했는지. 그게 오해였다는 걸, 퍼즐을 잘못 맞춘 건 자신이라는 걸 남편도 깨달은 듯했다. 그제서야 우린 서로의 이야기가 제대로 들렸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남편의 이야기를 진심을 다해 들어주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만났는데도 말이다. 맥주가 다 비워질 때쯤, 우린 말했다.
“우리는 참 다른 것 같아.”
“맞아. 참 다르지.”
그 말을 내뱉으며 우리는 더 편안해졌다.
나는 아스파라거스 감자스프의 맛처럼 살고 싶어졌다. 차이를 좁히기보다, 그냥 차이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모양도 향도 다른 두 채소가, 각자의 향을 뿜어내며 하나의 요리가 되었다. 남편과 나도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재했으면 한다. 나의 향도, 남편의 향도, 우리의 관계 안에서 충분히 살아있길 바란다. 설령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해도 괜찮다. 차이와 다름이 만들어내는 깊은 맛은 그만한 노력을 기울일 가치가 있으니까.
* 이 글에 등장하는 ‘아스파라거스 감자스프’ 레시피는 BLW연구소 《아이주도 이유식 유아식 매뉴얼 개정판: 레시피북》을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