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물 반찬

빈틈의 미학

by 오솔


문득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정성이 담긴 한 끼를 차려준다면, 나는 어떤 음식을 먹고 싶은가. 매일 삼시 세 끼를 차려야 하는 주부에겐 참 행복한 고민이다. 그래서 조금 구체적으로 상상해 보았다.


우선 깊은 산속 옹달샘이란 말이 절로 나올 만큼, 사방이 초록빛으로 빼곡한 숲으로 간다. 차가 덜컹이는 비포장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오두막 형태의 한 주택이 나온다. 간판에는 순우리말이 적혀있고, 굴뚝으로 구수한 내음이 풍기는 연기가 올라온다. 나는 허기가 져서 차를 급하게 주차하고, 그 집으로 들어간다. 낡아 보이는 외관과 달리, 내부는 깨끗하고 단정하다. 테이블은 약 3개 정도. 사장님 한 분은 주방에서 옅은 미소로 ‘어서 오세요’라는 말을 대신한다. 나는 투박한 나뭇결의 작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메뉴판을 들여다보다가, ‘나물 정식’을 주문한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창문 밖으로 새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있다 보니 이내 상이 차려진다.


무와 시래기가 들어간 된장국, 오색의 잡곡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난다. 그리고 그 앞에 놓인 6개의 나물들. 나는 나물의 이름은 잘은 모르지만, 갖가지 나물향들은 가리지 않고 모두 좋아한다. 나는 하나씩 나물을 먹어보기 시작한다. 아삭아삭 씹히는 식감이 좋은 나물, 쌉쌀한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나물, 들깨와 들기름 향이 잘 어울리는 나물이 있다. 모든 나물에 간은 슴슴하다. 그래서 나물 자체의 향이 더 진하게 올라온다. 분명 같은 양념으로 한 것 같은데, 모두 다른 맛이 나는 게 신기하다. 오래도록 씹으며 나물의 맛에 머물러본다.




생각만 해도 힐링이 되는 장면이다. 그만큼 나는 ‘나물 반찬’을 좋아한다. 맛있는 나물 몇 가지만 있어도 밥 한 공기는 금세 뚝딱 해치울 수 있다. 그러나 나물을 자주 만들진 않는다. 내가 만들면 충분한 맛을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알게 된 것이 있는데, 나물 요리는 쉬운 듯 보이지만 참 어렵다. 몇 번의 나물요리를 실패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나물을 잘 만드는 사람이 진짜 요리 고수일지도 모른다고.


신혼 때는 나물을 무칠 때 이것저것 많은 양념을 써봤다. 특히 나물을 무칠 때 꼭 ‘참치액’을 넣었다. 왠지 모르게 달짝지근한 맛이 첨가되면 나물을 먹을 때 첫 입이 만족스러웠다. 남편의 입에서도 ‘맛있다’라는 말이 꼭 나왔다. 그러나 점점 그런 나물은 물리기 시작했다. 먹다 보면 달짝지근한 냄새가 올라와 나물향을 덮었다. 그래서 어떤 나물을 무쳐도 대부분 맛이 비슷했다.


그러다가 사찰음식에 일가견이 있는 어느 스님이 남긴 말을 보게 됐다. 맛있는 채식요리는 간장과 들기름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그 말이 인상적으로 남아, 나도 두 가지 만으로 나물을 무쳐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양념을 하나둘씩 빼기 시작했다. 그렇게 최소한의 재료로 단순하게 나물을 무쳐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물론 가짓수가 적어지는 만큼 좋은 간장과 기름을 쓰려고 한다. 얼마 전에는 냉장고에 시금치와 콩나물이 남아있길래 나물로 무쳐보았다. 다른 조미료나 참치액은 빼고, 간장과 다진마늘, 참기름 만으로 무쳤다.


다소 슴슴한 나물이라 그런지, 첫 입은 별로 맛있지 않았다. 뭔가 이번 나물도 실패한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그러나 계속 손이 가긴 했다. 달짝지근한 불고기를 먹다 보면, 이내 콩나물로 돌아왔다. 양념이 가득한 깻잎김치를 먹다 보니 시금치나물로 손이 갔다. 빈틈이 가득한 요리였지만, 우리 식탁에 어떤 빈틈을 메워주는 듯했다.



이번 나물은 실패한 듯 하지만, 또 나름의 맛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고민이 됐다. 무엇 때문에 맛이 아쉬운 걸까.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양념만을 신경 쓰고 있었던 것이다. 나물은 데치는 순간부터 요리의 시작임을 잊고 있었다. 적절한 시간을 데치는 것, 데친 뒤 물기를 적당하게 짜는 것이 매우 중요함에도 그걸 간과했다. 그 과정이 잘 이루어져야 나물 고유의 식감과 향을 충분히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비워내고 덜어내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양념을 덜어냈더니, 내가 좀 더 근본적인 것을 놓쳤음을 알게 됐다. 역설적이게도 빈틈을 만들면서 나의 진짜 빈틈이 보인 셈이다. 그리고 요리만이 아니다. 요즘 내 삶에서도 덜어내야 할 것들이 많다.


틈틈이 sns를 보다 보면 수많은 짧은 영상 콘텐츠가 나온다. 남편에게 아침밥을 해주는 아내, 책육아를 하는 엄마, 육아를 하면서 자신의 사업을 성공시킨 사람들의 콘텐츠가 나온다. 영상을 보고 감탄하다가, ‘나는 저렇게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며 맥이 빠진다. 그들의 Sns 계정을 들어가면 자신을 표현하는 단어와 문장들이 나열되어 있다. 엄마와 아내, 주부이면서도 하나의 브랜드 자체가 되어가는 개인들. 그러나 나는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한 채 우두커니 바라볼 뿐이다.


한 때는 그런 사람들을 따라가기 위해 애썼다. 나의 강점을 어떻게든 찾아내어 나를 증명하고자 애썼다. 그러나 이내 깨달았다. 지금 나는 스스로를 표현할 모든 말들을 덜어내야 한다고. 그래서 나는 점점 빈틈을 만들어간다. 나에 대한 정의도, 타인을 동경하는 시선도, 그리고 어떻게든 나를 증명하려는 부담도 비워낸다.


그렇게 생긴 빈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두 가지가 있다. 매일의 나를 돌보고 이끌고 키워가는 행위, 그건 글쓰기와 요리이다. 간장과 들기름만으로 무쳐내는 나물처럼, 난 글쓰기와 요리에 몰두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다. 복잡한 세상의 자극과 내면의 소음은 비워내려 애쓴다. 그냥 그 두 가지에만 몸을 맡길 뿐이다. 그리고 이 단순한 행위가 나의 본연의 향을 되찾아주길 소망하고 있다. 혹시 모르는 일 아닌가. 이런 시간이 쌓여 언젠가 숲 속 깊고 작은 식당에서나 맛볼 수 있는 고수의 나물맛을 만들어낼지도.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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