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묵볶음

엄마의 시간

by 오솔

엄마가 된 후, 하루 중 가장 뜨거운 시간이 생겼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시간. 불이 타오르는듯한 주황빛 노을이 드리워지면, 나는 애타는 마음으로 시계를 본다. 곧 6시 20분. 남편이 퇴근해서 돌아올 시간이다. 남편의 퇴근과 동시에 나는 해야 할 일이 있다. 우리 가족의 저녁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최대한 빠르게 밥상을 완성해야 한다. 아이의 취침시간은 8시. 그전까지 밥을 먹이고, 소화시킬 겸 잠시 놀다가, 목욕까지 시키려면 무척 빠듯하다. 그래서 적어도 7시까지는 식사를 완성하는 게 중요한 미션이 되겠다.


남편이 현관키를 누르고 들어오면 아이는 문쪽으로 뛰어나간다. 이제부터 나만의 미션이 시작된다. 나는 당장 밥솥에 밥을 안치고 취사버튼을 누른다. 그리곤 냉장고를 열어 반찬을 확인한다. 아뿔싸. 해놓았던 밑반찬들이 다 떨어졌다. 오늘은 국과 김치만 놓고 먹어야 하나 당황스럽다. 그러다 냉장고 한편에 있는 어묵 한 봉지를 발견한다. 그래. 반찬 하나는 금방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필요한 재료는 양파와 어묵뿐이다. 당근도 함께 넣어주면 더 맛있지만, 급하니 당근은 생략한다. 양파와 어묵을 비슷한 크기로 채 썰어준다. 그리곤 기름을 두르고 양파와 어묵을 볶아주기만 하면 된다. 양념은 간장과 다진 마늘, 약간의 설탕이면 충분하다. 그렇게 나는 국이 끓고 있는 10분 동안, 어묵볶음을 만든다. 주방 가스레인지의 3구는 모두 켜져 있고, 조리대는 수증기와 열기로 뒤섞인다. 짧은 시간 동안 최대한의 집중력으로 무사히 미션 수행을 완료한다.


정신없이 상을 차리고 식탁에 앉으니, 몸에 힘이 쭉 빠진다. 피곤이 몰려오며 입이 바싹바싹 마른다. 밥 한 숟갈을 입에 넣었다. 분명 촉촉한 밥인데도 애석하게 입안을 거칠게 굴러다닐 뿐이다. 게다가 요리하면서 간을 보다 보니 입에는 이미 짠내가 배었다. 그래서 반찬과 국도 무슨 맛인지 잘 알 수가 없다. 나는 그저 맛있게 먹는 남편과 아이를 바라보며 위안받는다. 음식을 음미한다는 건 삶이 여유 있을 때 가능하다는 걸 깨달으면서 말이다.


그런 폭풍 같은 시간을 거쳐 탄생한 어묵볶음은 급하게 만드는 것치곤 반응이 좋았다. 남편은 ‘어묵볶음 맛있네’라는 말과 함께 금세 반찬그릇을 비웠다. 어묵볶음은 재료도 방법도 별게 없는데, 어묵의 힘만으로도 맛을 낼 수 있다. 고소하고 쫄깃한 어묵에 간장, 설탕의 양념에 더해져 맛깔스러운 밑반찬이 된다. 설탕은 조금만 넣어주어도 양파가 볶아지면서 올라오는 은은한 단맛이 있어 충분히 달콤하다.





어묵볶음을 먹으면서 문득 나의 엄마가 생각이 났다. 나는 어릴 적 어묵볶음을 자주 먹었다. 워킹맘이었던 엄마는 바쁠 때면 빠르게 만들 수 있는 반찬을 주로 해주셨는데, 그중 하나가 어묵볶음이었다. 워킹맘이었기에 늘 바빴던 엄마.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급하게 부엌으로 가던 엄마. 대충 던져놓은 가방과 벗은 그대로 말려있던 엄마의 옷가지들. 지친 얼굴색과 달리 한껏 빠르게 움직이던 엄마의 손. 그렇게 꺼져가는 불씨를 다시 되살려 요리를 하던 엄마였다.


나는 엄마가 원래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리고 엄마는 원래 요리를 빠르게 잘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나 엄마는 한정된 에너지를 그때 몰아서 썼던 것이었다. 그리고 배고프다는 딸의 재촉에 점점 속도가 빨라졌을 뿐이다. 최근 퇴직을 하고 쉬고 계신 엄마는 그때와는 참 다르다. 온종일 빈둥거리다 책을 읽고 드라마를 본다. 조용한 집안의 공기를 만끽하다 밥 하기가 귀찮다며 대충 때우기도 하신다. 나는 엄마의 게으름이 낯설지만, 또 반갑다. 마치 그때 몰아 썼던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 같아서.


반대로 나는 예전의 엄마처럼 변해가고 있다. 뭐든 느긋한 것을 좋아하던 내가 하루 24시간을 쫓기듯이 보낼 때가 많다. 워킹맘은 아니지만 내 일을 준비하고 있다 보니, 육아와 살림, 나의 일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늘 서툴다. 다 잘하고 싶어 에너지를 총동원하다 보면, 결국 힘이 빠져 다 손에서 놓아버리고 싶은 무력감이 몰려오기도 한다.


주변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아기를 낳고 내가 슈퍼우먼이 되어간다고, 아기를 키우면서도 나의 일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고. 그런 말들이 칭찬과 격려임을 알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그 과정에서 힘껏 갈아 넣은 나의 에너지, 눈물 어린 노력들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결국 엄마라는 존재는 모든 것을 해내야 하는 슈퍼우먼이 되어야만 하는 걸까.


어느 순간부터, 나는 24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것을 해내는 능력치가 올라가고 있다. 30분 안에 밥 한 상을 금세 차려내는 것처럼. 그러나 그런 시간과 나의 노력이 엄마의 희생, 가족을 위한 헌신으로만 포장되는 건 싫다. 이건 엄연한 노동이다. 나의 에너지를 투입하는 노동. 사회의 가장 축소판인 가정이라는 공간을 굴러가게 하는 노동. 나는 그 노동의 현장에서 애쓰고 있고, 온전히 인정받고 싶다. 무엇보다도 사람은 노동만 하고 살 수 없기에, 노동으로부터 벗어나는 나만의 시간도 충분히 인정받았으면 한다.


그때 엄마는 노동을 멈추지 않았다. 엄마는 늘 바빴고, 저녁을 먹고 나면 컴퓨터 앞에 앉아 또다시 일을 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엄마가 왜 그랬는지 알 것 같다. 엄마가 되고 나니, 노동을 멈추는 것 정말 어렵다. 나 역시도 엄마처럼 온전히 내려놓고 쉬는 방법을 가끔 까먹는다.


오랜 시간이 지나 떠올려보는 엄마의 어묵볶음은 짭짤한 눈물이 뒤섞인 밑반찬이었다. 엄마의 노력, 에너지, 그리고 늘 시간에 쫓겼을 분주함이 그려져 괜히 슬퍼진다. 가장 속상한 건, 빠르게 만들었는데도 늘 맛있던 어묵볶음이다. 어느 날은 맛이 좀 없어도 되는데. “엄마 힘드니까 대충 먹자”라고 말해도 괜찮은데. 늘 잘하지 않아도 충분한데 말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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