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씨름하고 남편과 투닥거린 어느 날,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날이었다. 이런 날에는 끼니를 챙겨먹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 날은 왠지 요리가 하고 싶었다. 아이가 자는 틈을 타 최대한 빨리 요리를 하기 위해 냉장고를 뒤적였다. 나물을 해먹으려고 사놓은 가지를 발견했다. 2년전 채식 생활을 할 때 해먹었던 가지파스타가 생각났다. 마침 파스타면도 있으니 이때다 싶어 요리를 시작했다.
- 파스타면을 삶을 물을 올려놓고, 야채들을 손질했다.
- 가지는 부드러운 식감을 오롯이 느낄 수 있게 뭉텅뭉텅 크게 잘라주었다.
- 슬라이스한 마늘을 올리브유에 볶아 마늘향을 입혀주고 양파, 방울토마토를 넣어 기름에 같이 볶아주었다.
- 가지는 기름을 빠르게 먹기 때문에 나중에 넣어주는게 좋다.
- 파스타면이 삶으면 면을 넣어 같이 볶아주면서, 간장으로 간을 해주었다.
요리를 하는 10분동안 아기는 고맙게도 잘 자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예쁜 그릇에 담아보고 왠지 기분이 좋아 사진도 남겨봤다. 파스타를 한입 먹는 순간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 느껴져 행복했다. 가지의 부드러우면서 쫀득한 식감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결혼생활을 시작하고 내 요리는 대부분 남을 위한 활동이었다. 퇴근한 남편을 위한 저녁상을 차리거나 집에 양가 부모님이나 친구들, 다른 손님들이 오시면 내놓는 한끼 식사. 아이를 출산하고 나니 아이 이유식을 만들고 있다. 오롯이 나 자신만을 위한 음식을 만드는 시간은 손에 꼽는다.
하지만 사실 내가 요리를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나를 위로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대 시절, 처음 다녔던 회사를 정리하고 나왔던 때, 백수생활을 하며 제대로 요리를 해먹어보기 시작했다. 적막한 자취방에서 신선한 채소를 다듬고 익히고 양념을 하는 순간은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걱정과 근심, 슬픔과 분노, 나를 휘감던 부정적인 에너지가 조금은 누그러졌다. 그리고 스스로 한 요리를 맛있게 먹으며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성껏 한 음식을 먹을 땐 그것 자체로 내게 좋은 에너지를 채워주는 것 같았다. 음식에 대한 진심어린 감사도 생겼다.
무엇보다 나를 진심으로 위로해주고 싶을 땐 ‘채식요리’가 생각난다. 피가 아닌 흙이 묻어있는 음식. 누군가에게 상처를 내지 않은 음식이 먹고 싶다. 채소는 하늘과 땅, 비와 바람과 햇빛, 사계절의 흐름이라는 자연의 힘을 머금고 자란다. 자연의 이치를 담은 음식을 먹고 있으면 내게 주어진 시련과 어려움들 또한 자연의 섭리이며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묵묵하게 견뎌보고 싶어진다.
파스타를 반정도 먹다보니, 아이는 잠에서 깨 ‘으앙’ 하고 울었다. 아이를 안고 정신없이 나머지 파스타를 먹었다. 무슨 정신으로 먹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먹었던 음식 중 가장 따뜻하고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