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by 다은

요즘 들어 감정이 자주 요동치는 것 같다.

출근길에 듣는 노래 한 곡에 눈물이 차올랐다가

금세 기분이 나아진다.


봄에 재발할 확률이 높다던데, 또 무너지면 어쩌지..


잠이 오지 않는 밤,

불안해진 마음에 인터넷을 뒤적인다.


‘조울증 증상’


이것도 나 같고, 저것도 나 같다.

“망했다. 재발하려나 보다.”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긴 밤을 삼켜버린다.


시계를 보면 벌써 2시.

자야 한다. 그래야 내일을 버틴다.

그런데 걱정은 쉽게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3시가 되었다.


이대로 무너질 순 없다.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버텨왔는데.

불안을 애써 물리치고 상담받는 날만을 기다린다.

한 달 같던 일주일이 지나고, 상담사 선생님을 마주한다.


“저 요즘 조울증 증상이 조금 있는 거 같아요.

재발할까 봐 두려워요.”


말 한마디 꺼냈을 뿐인데, 눈가에 금세 눈물이 고인다.


“정신과 선생님이 알려준 증상들 체크해 봤는데

이것도 맞는 것 같고, 저것도 맞는 것 같아요…”


속사포처럼 쏟아낸다. 어지간히 불안했나 보다.




선생님이 말한다.

”증상들을 하나씩 종이에 써볼까요?“


잠을 못 자거나

생각이 많아지거나

감정 기복이 심하거나

이유 없이 슬프거나

이유 없이 엄청 들뜨거나


신기하게도, 한 줄씩 적어 내려가는 동안 마음이 차분해졌다.


”자, 이제 읽으면서 옆에 Yes or No 써볼게요.“


하나씩 생각해 본다.


잠을 못 자거나

- No. 피곤해서 너무 잘 잔다. 가끔 커피 마신 날 빼고.


생각이 많아지거나

- Yes. 회사 일도 벅찬데, 책방이나 사서공무원 준비까지 고민하느라 생각이 많아졌다.


감정 기복이 심하거나

- “음, 잘 모르겠어요.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선생님이 덧붙인다.

”감정 기복이 심하다는 건 기분이 좋았다가 우울했다가 하루에도 수십 번 반복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No.


이유 없이 슬프거나

-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이유 없이? 내가 이유 없이 슬펐던가?

No. 회사 일로 너무 지쳐 있었고, 위로가 되는 노래를 듣다 보니 눈물이 고인 것이다.

분명 이유는 있었다.


이유 없이 들뜨거나

- 이것도 마찬가지로 No.


증상을 써보고 Yes, No만 체크했을 뿐인데

불안한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래, 이건 조울증 증상이 아니야.

누구나 느끼는 당연한 감정이야.

재발하지 않을 거야.


조심스레,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예전 같았으면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렸겠지만,

이제는 한 발 물러나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감정의 늪에 빠지려고 할 때면

왜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 본다.


지난여름부터 이어진 심리 상담 덕분이다.


처음엔 상처받았던 지난날들의 이야기를 꺼내는 게 힘들었다. 마음속에 곪아 있는 상처를 후벼 파내는 기분이었다. 갈 때마다 눈물을 쏟아냈다.


지금은 완전히 괜찮아졌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지난날의 나와는 달라졌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아프면 안 된다고,

무조건 이겨내야 한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감정에 빠져 허우적 대는 건

약한 사람이나 하는 일이라 여겼고,

울고 나면 더 불안해지기만 했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충분히 아파한 뒤에야 비로소 이겨낼 수 있다는 걸.

마음 놓고 울어도 된다는 걸.


“주인공들은 줄곧 운다.
괜찮지 않다고 말한다.
눈물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두는 것도 방법이 되지 않을까.”

- 이근화,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


예전 같았으면 억누르기 바빴을 감정들을

이젠 조심스럽게 들여다보고, 따뜻하게 다독여본다.


조금씩, 조금씩 상처가 아물고 있음을 느낀다.

새 살이 돋아나고 있음을 느낀다.


여전히 ‘조울증’이라는,

언제 떠날지 모를,

어쩌면 평생 곁에 머물 손님이 두렵지만,

나는 분명 예전보다 단단해졌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를 돌본다.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가지며,

오늘 하루 잘 버텨낸 나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준다.


언젠가 이 기록들이

누군가의 밤에 조용한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사진 출처 : Unsplash, Photo by Jordan Steran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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