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도 회식. 오늘도 회식. 8명뿐인 회사에 불참이란 건 있을 수 없다. 무조건 참석해야만 한다.
오늘의 메뉴는 삼겹살. 만만한 게 삼겹살이다. 업무를 마치고 회식 자리로 향했다. “자 다들 건배하자! 오늘도 수고했고.” 한 병, 두 병… 소주병이 점점 늘어간다.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다. 집으로 갈 수는 없으니, 눈치를 보다 화장실로 향했다. 속에서 올라오는 술 냄새에 취할 것 같아 세면대에서 입을 여러 번 헹궜다. 정신 차리자! 다시 자리로 돌아갔지만,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 같다.
“저기… 저 집에 가면 안 될까요…?” 상사에게 은근슬쩍 물었다. “뭐? 벌써 간다고?” 이제 막 분위기가 올랐는데, 가긴 어딜 가 하는 눈치다. 다른 팀 대리님이 “노래 한 곡 뽑으면 가게 해줄게~” 하며 가방에서 블루투스 마이크를 꺼낸다. 그게 왜 거기서 나오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런 거 따위 신경 쓸 시간이 없다.
머리를 굴려서 신나는 노래를 생각해 낸다. 홍진영의 사랑의 배터리. “나를 사랑으로 채워줘요~사랑의 배터리가 다 됐나 봐요” 고깃집에 있는 모든 사람이 쳐다보는 것 같지만, 쪽팔림 따위 뒷전이다. 집에 가야만 한다는 생각에 열창했더니 고깃집 사장님이 선물이라며 우산을 쥐여 주셨다. 다행히 사장님이 약속을 지키셨고, 그날은 집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이틀 뒤, 또 회식이다.
“나 오늘도 회식이야. 저녁 같이 못 먹을 거 같아.” 남자친구에게 말했다. “뭐? 또 회식이라고?” 취업 준비 중이었던 남자친구는 이렇게 회식을 많이 하는 걸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긴 했다.
“그냥 적당히 먹고 2차에서 나와.” “어떻게 나와…” “왜 못 나와, 집 간다고 하고 나오면 되지.” 사회생활을 겪어보지 않은 남자친구는, 회식 자리에서 중간에 나오지 못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늘어가는 회식만큼 남자친구와의 다툼도 늘어갔다.
하루는 직원 휴게실에서 술을 마셨다. 당시 다니던 회사 건물은 위층에 직원 휴게실이 따로 있었는데, TV와 탁구대, 이불까지 갖춰진 일종의 ‘그들만의 아지트’ 같은 공간이었다.
오늘도 역시나 술자리가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였고, 머릿속엔 도망치자는 생각뿐이었다. 머리를 굴렸다. 일단 화장실 간다고 하고 나가자. 근데 신발도 갈아 신어야 되고, 가방도 챙겨야 하는데 누구라도 마주치면 어쩌지. 고민 끝에 이 상태로 그냥 가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날은 폭설이 내린 날이었다. 펑펑 내리는 눈을 뚫고 슬리퍼를 신고 가는 내가 너무 초라해서 지하철을 타고 오는 내내 울었다. 한 아주머니가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는데 그 순간이 서러워서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슬리퍼에 눈이 스며들었고, 양말이 점점 젖어갔다. 한 시간 남짓한 퇴근길이 그날은 유난히 멀게 느껴졌다.
이런 날들이 이어지다 보니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결국 위염도 걸렸다. “저 위염이라서요, 오늘은 못 갈 거 같아요.” “위염? 그런 건 소주로 소독하면 돼~” 위염이라고 하면 당연히 집에 가라고 할 줄 알았는데, 소독하면 된다는 말을 들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허구한 날 회식하고 늦게 출근하거나 숙취 때문에 연차를 쓰면서, 정작 아파서 연차를 쓴다고 하면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눈치를 주었다. 술자리 때문에 쓰는 건 괜찮고, 아파서 쓰는 건 안 된다는 이 모순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1년 버티고 퇴직금 받고 나와야겠다며 아등바등 버텼다. 그사이 몸도, 마음도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1mm의 틈새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