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멈춰버린 시계처럼 두 달을 흘려보냈다.
한 달 만에 잘렸다는 충격이 너무 커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자책했다가, ‘한 달 만에 잘린 애는 나밖에 없겠지, 쪽팔리네’ 부끄러웠다가, ‘이러다 진짜 사회생활 못하면 어쩌지’ 걱정도 됐다.
그렇게 땅굴 속에 파묻혀 있다가, 불현듯 정신이 들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자책만 하며 다른 걸 미처 생각하지 못하다가, 인턴을 하면서 부족했던 점은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채워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침, 학교에서 무역 사무 교육과정을 진행한다고 해서 신청했고, 왕복 3시간을 다니며 수업을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왕복 3시간을 다녔지 싶지만, 그때는 수업 하나에라도 매달려야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몸을 움직이니 우울한 감정도 점차 사그라들었다.
한 번 실패했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어차피 다시 부딪혀야 할 일이라면, 지금이 딱 맞는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사회로 나갈 용기를 얻고, 곧장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몇 군데 지원하니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이전 회사보다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이었지만,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기회에 감사했다. 면접까지 남은 시간은 단 이틀. 예상 질문에 답해가며 열심히 준비했다.
운이 좋게 면접에 붙고 바로 다음 주부터 출근했다.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몇 번이나 깊게 숨을 내쉬었다. 다시 시작한다는 설렘보다, ‘또 잘리면 어떡하지’ 두려움이 더 컸다.
내가 맡은 일은 수출 무역 사무. 제품 견적 메일에 대한 답변을 보내는 것이 주된 업무였다. 입사 후, 한 달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이것저것 배우고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보냈다.
회사에서 다루는 제품은 이전까지는 들어본 적도 없던 제품이라 익히는 데만 2주는 넘게 걸린 것 같다. 문과였던 나는 베어링이라는 존재를 입사하고 나서 처음 알았는데, 볼베어링, 롤러베어링, 구름베어링… 종류도, 사이즈도 각양각색이었다. 내 눈에는 다 똑같아 보이는데, 품번은 제각각이었다.
그 당시 사수는 매우 예민한 사람이었는데, 조금만 틀리기라도 하면 버럭 소리를 지르고 짜증을 내서, 또 틀릴까 걱정하며 항상 주눅 들어 있었다.
다른 문제도 있었다. 사장님은 토익 점수가 700 후반대를 보고 뽑았을 텐데, 나는 영어를 읽을 줄만 알고, 말하기는커녕 작문도 하지 못했다.
영어 울렁증. 꼬불거리는 알파벳만 보면 머리가 굳었다. 견적 메일이 오면 아주 간단한 문장도 번역기를 돌려서 보냈고, 해외 거래처에서 전화가 오기라도 하면 얼버무리다가 부장님께 전화를 돌려주었다.
이런 하루가 반복되다 보니, 출근하는 게 점점 고역이었다. 힘든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건 격주로 하는 토요일 출근이었다.
9시부터 13시. 딱히 해야 하는 일은 없다. 업무를 지시하는 부장님도 없으니 한 달도 되지 않은 신입사원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4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인터넷 서핑뿐. 해야 할 일도 없고, 딱히 바쁜 것도 아닌데 왜 출근을 해야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다시 취업하고 열심히 해보자고 마음을 굳게 먹었는데, 점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애써 외면하려고 했지만, 1mm의 작은 틈새가 조금씩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