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아침에 백수가 되었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머릿속엔 온통 이 생각뿐이었다. 출근도 30분 일찍 했고, 시키는 일도 열심히 했다.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몇 날 며칠을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침대에 멍하니 누워있다가, 문득 20대 초반에 아르바이트에서 잘렸던 일이 떠올랐다. 회전 초밥집에서는 너는 걸음걸이가 왜 그러냐면서 잘렸고, 초밥 뷔페 집에서도 빨리빨리 안 움직인다고 일주일 만에 잘렸다.
알바에서도 잘렸는데, 취직을 해서도 한 달 만에 잘리다니. 나 자신이 사회 부적응자처럼 느껴졌다.
다들 잘만 다니는데, 왜 나만.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땅굴을 파고 들어갔다.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모두 다 끌고 와서 ‘또 잘렸네’ 자책했다.
스스로의 안티가 되어 ‘왜 그랬냐’며 악플을 달았고, 그 모진 말들을 마음속에 하나씩 쌓아 두었다. 휴지통에 버리지 못한 채 계속 쌓아 두었다. 모진 말들은 나를 갉아먹었고,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하게 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항상 일을 못 했던 건 아니다. 공장에서 일했을 때는 같이 일했던 이모님이 ’ 쟤는 깡으로 버틴다 ‘라며 아들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고,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일했을 때는 스테이크 판매 실적이 좋은 편이었다. 샐러드 바만 먹으러 온 손님들도 ‘한번 먹어볼까?’ 하며 주문하곤 했다.
이런 기억들은 까맣게 잊고, 실패했던 기억들만 모조리 끌어왔다. 나도 분명 잘했던 적이 있는데, 잘렸던 기억의 조각들만 가져와서 땅굴을 파고 또 파고 끝까지 내려갔다.
한동안은 웅크려 지냈다. 충격이 너무 커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집 근처 도서관에서 가서 책을 읽는 것뿐이었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센서티브>
<혼자 잘해주고 상처받지 마라>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
이런 책을 읽으면서, 예민한 건 나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 나는 그저 나로 살아가면 된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았다. 책 속 문장들이 조용히 다가와 토닥이며 위로를 건네주었다.
땅굴의 끝에 다다르니, 당시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에 빠져서 다른 걸 미처 생각하지 못하다가,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잘못했건, 하지 않았건 상관없이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걸.
구렁텅이 속에서는 내 입장만 생각해서 주변을 보지 못한다. 조금만 고개를 들면 햇빛이 있는데, 눈앞의 어둠만 본다. 눈앞에 잡초를 보느라, 무성한 숲을 보지 못한다.
하지만 아무리 긴 터널도 끝이 있는 거처럼 깊은 어둠은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다. 작은 불빛이 비치기 시작하면, 어느새 세상은 빛으로 가득 찬다.
정말 다행히도, 나 역시 그 빛을 따라 구렁텅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다시, 도전한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