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까지만 일해야 할 것 같아.”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였다. 점심을 먹고 돌아와 일하고 있었는데, 팀장님이 회의실로 불러서 말했다. ‘갑자기 왜 부르지? 내가 뭘 잘못했나?’ 불안하면서도, 별일 아니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불과 이틀 전만 해도, 팀장님은 내게 첫 월급으로 부모님께 뭘 사드릴 거냐며 물었다. 주임님도, 대리님도 다 같이 웃으며 얘기하던 모습들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쳤다.
’어차피 자를 거면서 그걸 왜 물어본 걸까.‘ 그 순간이 떠올라 더 허무하고 배신감이 밀려왔다. ’혹시 다른 사람들은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 알고 있었으면 귀띔이라도 좀 해주지.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굴 수가 있지?‘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다.
첫 취업이었다. 3개월 인턴 후 정규직 전환이 예정되어 있었고, 나는 열심히 하면 자연스럽게 정규직이 될 거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런데, 한 달 만에 잘렸다.
“혹시… 제 평가 점수가 낮은 건가요?” 울먹이며 물었다. “아니, 그건 아니고… 팀을 나누게 되었는데…“
아, 나는 어느 팀에도 쓸모없는 존재구나.
그런 존재였구나.
그 이후로 팀장님의 말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1년 반이라는 긴 휴학을 마치고, 겨우 졸업해서 들어간 회사였다. 조심스럽게 내디딘 첫 사회생활이었다. 그런데 고작 한 달 만에 끝이라니.
한 달 만에 잘리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까. 교환학생 갔다가 두 달 만에 돌아왔을 때처럼 또다시 패배자가 된 기분이었다.
이번엔 K.O.
주먹 한 번 제대로 날려보지도 못하고 졌다.
‘한 번 더 재발하면 다시는 사회생활 못할 거예요.‘ 정신병원에서 퇴원할 때 주치의가 엄마한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 역시 나는 안 되는구나.
나는 사회생활 못하는 애구나.
엄마한테는, 아빠한테는 뭐라고 말하지. 당장 내일부터 백수인데, 출근하는 척 나와서 어디라도 가야 하나.
제약회사에 들어가서 아빠가 엄청 좋아했는데…
첫 월급 타면 맛있는 거 사줄 거라고 당당히 말했는데…
남자친구한테는, 친구들한테는 쪽팔려서 어떻게 말하지. 숨긴다 해도 어차피 다 알게 될 텐데.
왜 나만,
다들 잘만 다니는데, 왜 나만.
교환학생 갔다가 돌아온 애는 나밖에 없을 거야. 한 달 만에 잘리는 애도 나밖에 없을 거야. 내가 뭘 잘못했길래,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그래도 남한테 피해 안 주려고, 착하게 살려고 애썼는데.
중국에서 돌아왔을 때처럼, 또다시 구렁텅이에 처박히고 말았다. 이번에는 더 깊숙이.
조울증 재발 이후, 2년 동안 별일 없이 잘 지냈다. 아빠가 자퇴하고 공무원 준비하라고 했지만, 괜찮다고, 나는 할 수 있다고 버텼고, 결국 졸업도 했다. 그렇게 겨우 다시 사회로 나와 걸음을 뗐는데, 또다시 브레이크가 걸렸다.
엄마는 내가 무너질 때마다 말했다. 신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만 준다고. 조금만 참고 버티면, 다 지나갈 거라고.
그런데, 더 이상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도대체, 뭘 그렇게 잘못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