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버텨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by 다은

어울리지 못하는 내가 이상한 걸까? 사회생활을 못하는 걸까?


다들 회식 자리를 즐기는데, 나만 겉도는 것 같았다. 그들 사이에 있으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이틀에 한번 꼴로 회식하는 걸 당연히 여기는 이들 사이에 있으니, 어떻게든 빠지고 싶어 애쓰는 내가 사회부적응자처럼 느껴졌다. 회식자리에서 늘 구석 자리를 찾아 앉고, 말 한마디 못한 채 멀뚱히 앉아 있는 나 자신이 점점 초라하게 느껴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는 회식도 참기 힘든데, 더 힘들었던 건 그 사이사이 던져지는 말들이었다. 눈치를 주는 농담, 선을 넘는 외모 지적.


회식 다음 날이면 차장님이 음료수를 사 오곤 했다. 한 번은 참석하지 않았더니, ”어제 술 안 마셨으니까 “ 하며 내 것만 빼고 사 왔다. 치졸하기 짝이 없었다. ‘음료수 하나에 몇 푼이나 한다고. 이게 무슨 상황이지. 따돌리는 건가?‘ 싶었다. 전날 술을 거하게 마신 날은 다 같이 중국집에 갔고, 내가 짜장면을 시키면 어김없이 “혼자 짜장면 먹네? 어제 술 안 마셔서 그런가 봐?” 라며 한마디 던졌다. 회식에 빠질 때마다 이런 식으로 눈치를 줬다.


지금 시대였으면 문제 됐을 외모지적도 서슴지 않았다. 사원증을 가리키며 “이거 다은 씨 맞아? 아닌 거 같은데~” 라며 비꼬거나, “화장 좀 하고 다녀”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졌다. 베어링 무게를 재는 용도로 사용하는 저울이 있었는데, 몇 키로냐며 한번 올라가 보라고 하기도 했다. 당시 한창 살이 쪄서 스트레스받았던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수치스러웠지만, 그들은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 속으로는 ‘그럼 니들은 얼마나 크다고 ‘ 부글거렸지만, 그저 억지웃음으로 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 회사에서 들었던 말 중 가장 어이없었던 건, 부장님의 말이었다. 대뜸 “고정관념 같은 거 있어?”라고 물어서, 당황해서 말을 흐렸더니, “물을 그렇게 많이 마시면 살이 빠진다고 생각해?”라고 했다. 물을 자주 마시는 것 마저도 뭐라고 하다니. 너무 어처구니없어서, 무려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이런 날들이 반복되면서, 아침에 일어나면 한숨부터 나왔다. 양치할 때는 구역질이 났고, 속이 뒤틀린 것처럼 배가 아프기도 했다. 하루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약국에서 산 비상약으로 버텨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병원을 찾았고, 의사는 스트레스성 위염이라 했다.


몸이 아프니 얼굴에도 티가 났다.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많아졌고, 별일 아닌 일에도 짜증을 냈다. 출근길엔 차에 치여서 사고라도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럼에도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다. 권고사직을 당하고 겨우 다시 취업한 터라, 여기 아니면 나를 받아줄 곳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1년도 못 버티고 또 그만두면 부모님께도 친구들에게도 떳떳하지 못할 거 같았다. ‘쟤는 사회생활 못해.‘라는 인식이 박힐까 두려웠고, 어쩌면 다시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할 거란 불안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회사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하나의 경험일 뿐이었다. 그렇게까지 목숨 걸 필요는 없었다. 나와 맞지 않는 회사가 있다면, 어딘가에 나와 맞는 곳도 있다는 걸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때로는 아닌 것 같다는 직감이 들 때, 그만두는 용기도 필요하다. 그 선택은 도망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2017년, 그 시절 나에게 돌아간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너는 잘못한 게 없어. 다른 친구들은 다 잘만 다니는데, 왜 너만 잘리고 적응도 못하나 싶지? 비교하지 않는 건 어렵겠지만, 네 마음속 진짜 목소리에 귀 기울여봐. 네가 진짜 원하는 건 무엇인지, 무엇을 좋아했는지. 너는 네가 바라는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사람이야.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전하고 싶다. 잘하고 있다고, 자신을 믿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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