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매니저, 이번 달 광고는 어떻게 진행할 거야?”
사수는 있었지만 기획을 담당하고 있었고, 마케터는 나 혼자였다.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고, 물어볼 사람도 없어 답답했다.
나를 뽑아준 대표님께 보답하고 싶었지만, 의욕만 넘치고 실력은 따라주지 않았다. 이렇게 다니다가 또 잘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덮쳐왔다. 뭐 하나라도 해봐야겠다 싶어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사수가 알려준 마케팅 커뮤니티에서 필독 도서를 검색해서 <마케팅 불변의 법칙>, <설득의 심리학>, <컨테이저스> 같은 마케팅계의 바이블을 하나씩 도장 깨기 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메모해 두고, 다음 날 광고 문구에 반영했다. 책은 내 사수이자 동료가 되어주었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아무것도 몰라서 멀뚱멀뚱 앉아 있었는데, 30여 권의 책을 읽으며 하나씩 알아가니 이보다 재밌는 일이 없었다. 내가 기획한 광고의 효율이 잘 나올 때의 그 쾌감은 잊을 수 없다.
문구를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어떤 이미지를 사용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점도 흥미로웠고, 제품에 맞는 타겟을 찾아 하나씩 적용해 가는 재미도 있었다. 사수와 함께 기획한 이벤트를 진행하며 2,000명도 채 되지 않았던 SNS 팔로워가 1만 명이 넘었을 때의 그 짜릿함. 천직을 찾은 느낌이었다.
마케팅을 시작한 뒤로 SNS를 할 때에도, 유튜브를 볼 때에도, 대중교통을 타고 다닐 때도 광고만 눈에 들어왔다. 예전에는 무조건 건너뛰기를 눌렀는데, 카피나 이미지를 어떻게 구성했는지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우물 안에 있던 개구리가 처음으로 세상 밖에 나온 것처럼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큰 힘이 되었다. 이전 직장에서는 “책이 뭐가 재밌어?”라는 말만 들었는데, 이곳에서는 책을 좋아하는 동료들과 독서 모임을 하며 업무에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했다.
좋아하는 걸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일한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구나 느꼈다. 이전 직장과는 다르게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조금씩 자신감을 되찾았다.
특히 인스타그램 DM으로 받은 메시지들이 기억에 남는다. “미뤄왔던 사진 정리를 쉽게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친절하게 답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도 회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구나 뿌듯해서 괜스레 웃음이 났다.
보람은 거창한 데 있는 게 아니구나, 이런 사소한 말과 소소한 성취에 있구나 깨달았다. 그 작은 순간들이 모여 나를 일으켜 세웠다.
한 달 만에 잘리기도 했고, 울면서 겨우 버텼는데도 잘리기도 했다. 몸도 마음도 무너졌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다고, 나를 받아주는 곳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마냥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나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으로 넘어지고 넘어져도 또다시 일어났다. 두 번의 권고사직을 지나 이제야 긴 터널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또 주저앉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살아가면서 어떤 시련이 닥칠지 모른다.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던, 작은 보람을 느꼈던 순간들이 내게 손을 건네줄 것이라 믿는다. 그 손을 잡고 다시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