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을 마흔이 넘어서도 할 수 있을까?”로 시작된 고민은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로 이어졌다.
권고사직을 두 번이나 겪다 보니, 새로운 회사에 들어가면 언제 또 잘릴지 몰라 불안했다. 이제는 내가 오래 할 수 있는 일,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
어떤 직무를 시도해 볼지 며칠을 고민한 끝에, 회계 부서는 어느 회사마다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매번 새로운 광고를 기획해야 하는 일에 진절머리가 났기에, 매일 루틴한 업무가 반복되는 회계 직무에 관심이 생겼다.
그쪽 일을 하고 있던 친구들도 ‘네가 꼼꼼해서 잘 맞을 거 같다’고 했고, 직업 선호도 검사 결과도 안정을 추구하는 관습형이 가장 높아 경리 사무원이 적합하다고 나왔다.
퍼블리싱도 배워봤지만 수업을 아무리 들어도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고, 새로운 이벤트를 기획할 때마다 머리를 쥐어 짜내야 하는 마케팅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고민 끝에 회계 쪽으로 도전해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업무에 가장 기본이 되는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학원에 등록했다. 두 달가량 집과 학원을 오가며 두 눈을 부릅뜨고 수업을 들었다. 수업이 끝나면 학원에 남아서 공부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복습했다.
퇴사 후 어영부영하다 보니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가 버려서, 두 달 안에 무조건 따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전산세무 2급과 전산회계 1급을 취득하고 곧장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자격증만 있으면 쉽게 취업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냉담했다. 좀 더 전문적인 자격증이 있어야 되나, 서른 살이라 신입으로 뽑기엔 부담스러운가, 별생각을 다 했다.
운이 좋게 면접 기회가 생겨도, 결혼은 했는지, 출산 계획은 있는지와 같은 불편한 질문을 받아야만 했다. 심지어, 남편이 지방으로 발령을 받으면 따라갈 것이냐는 질문도 받았다.
면접을 보고 나니 의문이 들었다. 왜 지원자의 역량을 평가하는 질문이 아닌, 이런 질문들로 내가 평가를 받아야 하는 건가. 서른 살 기혼 여성은 이런 질문을 받는 게 당연한 건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출산 계획이 없으면 합격이고, 있으면 불합격인 건가. 나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는 건가. 회사는 어떤 대답을 원하는 것인가.
면접 자리에서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아직 계획은 없습니다” 대답했지만, 서른 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런 질문을 받아야만 하는 현실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런 나라도 받아주는 회사를 찾는 것뿐이었다. 몇 번을 다시 지원한 끝에 다시 면접 기회가 생겼고, 이번에는 합격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최종합격을 축하드립니다.” 합격 통보 문자를 받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퇴사 후부터 지금까지, 일 년 넘는 시간 동안 취업 준비를 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다가오는 추석 연휴, 친척들의 “요즘 뭐 하고 지내냐?”는 질문에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첫 출근 날, 나도 이제 돈을 번다는 생각에 기쁘기도 하고, 어딘가에 소속되었다는 생각에 안심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처음 접해보는 직무를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했다.
‘다시 또 잘리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나를 압박하려고 할 때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열심히 해보자’ 다독였고, 그렇게 하루하루 견뎠다.
인수인계를 받을 때면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다 받아 적었고, 아침에 일찍 가서 배운 내용을 정리했다. 모르는 게 있을 땐 바로 물어봐서 업무를 최대한 빨리 익힐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한두 달 지나고 회사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 갔지만, 잘하고 싶다는 마음과 실수하면 안 된다는 압박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전표를 입력하거나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는 업무를 할 때면 틀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잔뜩 긴장한 채로 일했다.
“100점이 될 수는 없어. 80점, 90점만 돼도 충분해.” 실수해서 주눅이 들어 있는 나를 보며 상사가 위로해 주었지만, 100점이 되고 싶다는 마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새로운 일을 배우는 것도 재밌고 적성에 맞는 것 같았지만, 부담도 함께 커졌다. ‘나에게 맞는 일’이라는 확신이 드는 한편, ‘과연 오래 버틸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긴장되는 게 당연하다며 애써 다독여 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를 조여 오고 있었다. 나를 짓누르는 압박은, 갈수록 점점 더 심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