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넘어서도 할 수 있을까

by 다은

이 일을 마흔이 넘어서도 계속할 수 있을까.


일을 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3년 반 동안 마케팅 일을 하면서 보람 있었던 순간들도 많았지만, 트렌드에 민감해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과연 계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캐릿이라는 트렌드를 알려주는 뉴스레터를 읽을 때마다, 트렌드의 중심에 있었던 20대 초반과는 다르게 뉴스레터를 통해 트렌드를 공부해야 한다는 현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친구들 사이에서 냉동인간이라 불릴 정도로 유행을 모르고, 누군가 밈을 활용해서 농담하면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는데, 여기서 더 나이가 들면 어쩌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 일을 마흔이 넘어서도 할 수 있을까?”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중소기업 중에 중소기업. 다니던 회사의 규모는 작았고, 연봉은 2,600만 원대로 4년 차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수준이었다. 이곳에 계속 머무르면 성장도 보상도 없을 거라는 생각에 이직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가고 싶었던 출판사를 포함해서 인터넷 서점 등 출판과 관련된 몇몇 곳에 지원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일을 하면서 고민될 때마다, 가족이나 친구와의 관계에서 고민이 있을 때마다 책에서 답을 찾곤 했기에, 책을 가까이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비록 도전에 실패해서 이 회사에 들어왔지만, 다시 시도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불합격 소식뿐,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코로나라는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고, 이직 준비와 결혼 준비까지 겹치면서 몸과 마음이 지치기 시작했다. 재밌었던 일도 흥미를 잃기 시작했고, 회사에 가는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졌다. 버티지 못한 나는 결국 퇴사를 선택하고 말았다.




그만두고 나니 고민이 더 깊어졌다. 마케팅 업계에 다시 도전해 볼까. 아니면 아예 새로운 분야에서 다시 시작해 볼까.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주변 사람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니, 같은 회사에서 일했던 동료가 퍼블리싱 쪽도 괜찮다고 권유했다. 학원에 등록해서 몇 주 동안 배웠지만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수업을 들을 때면 몸은 강의실에 있었지만, 정신은 저 멀리 어딘가를 떠다니고 있는 듯했다. 집에 돌아와서 복습해도 수업 진도를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어 결국 수강을 포기하고 말았다.


돌고 돌아 다시 마케팅인가. 고민 끝에 다시 이직 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이전보다 규모가 큰 회사에 입사했다. 연봉이 올랐다는 기쁨도 잠시, 물경력이라는 생각이 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4년 차이지만, 연차에 비하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중고 신입과 다름없었다. 팀장님이 업무를 지시할 때마다,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머릿속엔 걱정이 가득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일요일 저녁이면 다음 날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에 잠이 오질 않았고, 아침에 출근 준비할 때면 2호선 지옥철에 몸을 욱여넣고 갈 생각에 낯빛은 점점 어두워졌다. 웃음을 잃어가는 내 모습을 보며, 부모님과 예비 신랑인 남자 친구는 회사를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결국 이번 회사는 두 달 만에 퇴사하고 말았다.




두 번의 퇴사를 겪으며 내가 오래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월급이나 회사 규모로만 채워지지 않는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오래 할 수 있는 일과 내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 사이의 교집합을 찾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두 번의 권고사직과 두 번의 퇴사. 벌써 네 번째 회사였다. 나는 왜 한 곳에서 오래 버티지 못할까 자책도 했지만, 자책은 그만하고 더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한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가고, 연말이 다가오면서 다시 또 조급해지지만, 하나씩 시도하면서 차근차근 준비해 가고 있다. 지금 했던 고민이 마흔이 되었을 때 조금은 가볍게 느껴지길 바라면서 오늘도 천천히 나아가 본다.


SOLE의 <Slow> 가사처럼 모든 게 완벽하진 않아도, 나 혼자만 느린 것 같아 힘들어도, 중요한 건 천천히 나아가는 것이라는 걸 되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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