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렇게까지 일해야 되나.
매주 월요일 아침, 주간 보고 업무를 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었다. 자료를 건네고 자리에 돌아오면 실수할까 봐 걱정돼서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너무 긴장돼서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어 긴장을 완화해 주는 진정제도 처방받았다. 아침에 두 알씩 먹고 출근할 때면 한숨부터 나왔다. 내가 이렇게 약을 먹어가면서까지 일을 해야 되는 건가.
아, 이건 좀 아닌데.
아침마다 임원실 주변을 정리하고 신문을 가져다 놓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었다. 달이 넘어가면 벽에 걸린 달력을 뜯는 것도, 손님에게 차를 대접하는 것도 내 몫이었다. 장례식이나 결혼식이 있을 때마다 조화를 보내는 일도 맡았다.
하라고 해서 하고 있지만, 업무와 무관한 일을 할 때마다 매번 의문이 들었다. 나는 경리부 직원인 건가, 비서인 건가. ‘여직원’이라는 이유로 이런 업무가 주어지는 게 당연한 건가.
“지금은 힘들지 몰라도 나중엔 다 도움이 돼.” “기계처럼 일하지 말고, 생각 좀 해.”라는 말을 종종 듣곤 했다. 격려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그 말들은 나를 조여왔다.
업무가 밀려서 감당이 안 될 때는 아침에 택시를 타고 한 시간 일찍 출근하기도 했다. 몇 번 반복되니 어느새 ‘어차피 일찍 올 거다.’ 당연시되었다. 아, 이건 좀 아닌데. 그 순간부터는 더 이상 일찍 가서 일하지 않았다.
아, 너무 힘들다.
외부 감사, 그리고 쉴 틈 없이 바로 이어진 세무 조사. 몇 달 동안 회사에 주말을 반납했다. 거의 2주 내내 쉬지 못하고 일할 때도 있었다.
무리하다 보니 몸에서는 점점 신호가 왔다. 화장실에서 코를 풀었는데 피가 섞여 나왔고, 허리도 점점 아파져 왔다. 출근길에 우는 날도 늘어갔다.
그만둘 때가 된 것 같다.
하루는 감기 기운에 목이 아파서 따듯한 물을 마시려고 커피포트에 물을 끓였다. 유리컵에 따르는 순간 컵이 깨졌고, 뜨거운 물이 허벅지에 쏟아졌다.
‘아, 내일 회사 안 갈 수도 있겠다.’ 너무 따갑고 아팠는데, 화상을 입은 와중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찬물로 다리를 식히며 생각했다. ‘이건 정말 아니다, 그만둘 때가 된 것 같다.’
힘들 때마다 썼던 메모를 다시 읽어 봤다.
'그냥 그만두고 싶다.' – 2024.12.06
'너무 힘들다.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모르겠다.' – 2025.01.09
저번처럼 도망치듯 그만두기는 싫어서, 힘들어도 이 악물고 버텨왔다. 적어도 나중에 후회는 하지 않았으면 했다.
“본인의 행복과 불행은,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알 거다. 스스로 불행을 느낀다면 끈기를 따져가며 버틸 필요가 있을까? 누구를 위한 끈기일까?”
- 서울의 3년 이하 퇴사자의 가게들
누구를 위한 끈기일까… 머릿속에 생각이 많아졌다. 상사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돈 모아야 하니까? 아니면 그냥 버텨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누구를 위해 이렇게 참고 있는 걸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한 달 넘게 고민한 끝에 퇴사하기로 마음먹었다. 퇴사 이후의 삶이 두렵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죽은 듯 흘러가는 하루가 쌓여가는 게 더 두려웠다. 겨우 버티면서 살아가는 하루가 더 버거웠다.
“그래도 일 년은 채우고 나가야 다른 데서 경력을 인정받지.”
그만둔다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그들은 알긴 할까.
매일 긴장 속에서 이 악물고 버티는 나를.
하루 종일 맘 졸이다가 집에 돌아오면 지쳐 쓰러져 잠드는 나를.
아마도 모르겠지. 아무도.
이제는 남들의 목소리가 아닌,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두려운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이번만큼은 나를 믿어 보기로 했다.
내 선택을 믿어 보기로 했다.
다른 누구보다,
내가 먼저 믿어 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