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불이 깜빡일 때 내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딱 두 가지다. 걸음을 서둘러 그대로 횡단보도로 돌진하느냐, 호흡을 고르고 느긋이 다음 신호를 기다리느냐.
생각해 보면 사람 간의 관계도 이와 마찬가지 아닐까? 건널까 말까 고민하다 빨간불로 바뀌어 버린 신호등처럼 다가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 사람과 끝내 가까워지지 못하거나, 나는 건너기로 결정했지만 그 사람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다음 신호를 기다리는.
나는 최근에 들어서야 누군가와 인연이 되는 길은 서로의 마음만 통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겨우 깨달았다. 누군가와 인연이 되기 위해서는 서로의 마음이 통해야 하는 것은 물론 각자의 마음의 농도, 처해있는 상황, 타이밍, 약간의 운 등등 모든 것이 맞아떨어져야만 한다.
서로 마음이 통하지 않아서, 상황이 좋지 않아서,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 운이 따라주지 않아서, 기타 등등. 그건 그냥 내 인연이 아니었던 거고, 내가 당신의 인연이 아니었던 거다. 서로가 서로의 진정한 인연이라면 돌고 돌아서 결국 만나게 되는 것처럼.
인연이 되지 못한 사실엔 별의별 사족을 다 갖다 붙일 순 있지만, 두 사람이 서로의 진정한 인연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강력한 부사만이 붙을 뿐이다. 그게 바로 인연을 가르는 확실한 차이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 언젠가 나는 교차로에서 당신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가기를 꿈꾼다. 그때쯤이면 아마 우리가 서로의 인연인지 아닌지를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스치면 인연, 스며들면 사랑'이라는 문구처럼 우리, 그때는 서로에게 스며들어 같은 신호에 발을 맞추게 될까. 아니면 저번과 같이 또 각자의 목적지에만 최선을 다하게 될까.
인연에서 시작된 이 많은 질문은 돌고 돌아 결국 또다시 인연에서 숨을 거두겠지. 이미 죽어버린 인연은 나 혼자 숨을 불어넣는다고 되살아나지 않는다는 걸. 그걸 잘 알고 있기에 지나간 인연은 뒤돌아보지 않는 게 상책일지도 모른다. 인연이란 게 이토록 냉정하고 잔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