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에게 살면서 해본 가장 미친 짓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나는 주저 않고 자정이 넘은 시간, 남자 친구를 보러 택시를 타고 안산에서 강남에 간 일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스물셋의 나이란 으레 그러했다. 감정이 이성을 지배하는 나이 말이다. 보고 싶은 열렬한 마음 하나만으로 굼뜬 몸을 움직이던 나이.
나이가 들수록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세상의 규격에 맞추려 노력하고, 상식 밖의 일은 아예 엄두도 내지 않으려 한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보다는 이미 이뤄놓은 것들에 안주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남녀관계도 마찬가지다.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나는 누군가 나에게 술을 먹은 채로 보고 싶다고 연락을 하면 이미 마음을 다 정리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그리움과 동시에 나에게 보고 싶다고 말하는 그가 갑작스레 보고 싶어지곤 했다.
하지만 만약 지금, 누군가 나에게 술을 먹은 채로 보고 싶다는 연락을 해온다면? 나는 아마 그리운 감정이나 보고 싶은 마음보다는 예의나 철이 없다든지, 나잇값을 못 한다든지 하는 생각이 더 앞설 것이다. 실제로 술을 먹고, 술김에,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는 행위는 사람 대 사람으로서도 썩 좋아 보이는 행동은 아니다. 그러나 툭 터놓고 말하자면 그 사람이 술을 먹었다고 해서 나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까지 훼손된 건 아닐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물일곱의 내가 좀 더 초점을 두는 부분은 '보고 싶어 하는 마음’보다는 ‘술을 먹고 연락한’ 부분일 것이다.
내가 했던 그 미친 짓도 올해만 지나면 벌써 5년 전이 된다. 그새 나는 이상보다는 현실에, 감정보다는 이성에, 미소보다는 냉소에 물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 한 켠에는 누군가를 위해서 미친 짓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잠들어있다. 그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나이와는 상관없이 각자의 동심과 열정, 사랑을 지니며 살아가는 법이니까.
영화 <어바웃 타임>을 보면 결혼식날, 비바람이 몰아쳐도 웃음을 잃지 않고 서로의 손을 꼬옥 잡는 장면이 있다. 그 둘을 보면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나도 그들 사이에 껴서 즐기고 싶을 정도로 재밌어 보이고 행복해 보인다. 그 장면을 보면서 처음 깨달은 것 같다. 아, 사랑에 빠지면 저런 얼굴이구나.
누군가 나에게 인생을 어떤 자세로 살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나는 바로 그 장면이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인생의 자세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날씨가 좋든 안 좋든 빙긋 웃을 수 있는 순수함과 긍정적인 마음, 내 손을 잡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삶을 같이 살아가는 소중한 사람들. 이 모든 게 그 장면엔 한데 버무려져 있다.
살면서 미친 짓을 하게 만드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인생의 전반에 걸쳐서도 몇 없을 것이다. 삶의 대부분을 미친 짓을 하며 보냈다면 그렇게 기억에 남지도 않았을 거다. 즉흥적인 걸 싫어하는 내가 오직 보고 싶은 마음 하나만을 가지고 무작정 차에 올랐던 소중한 겨울밤. 그때 그 순수와 열정, 그리고 사랑. 난 그것들을 오래도록 간직하며 남은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