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은 그야말로 무수히 많은 추억의 집합체다. 많은 사람들의 각기 다른 추억으로 점철되어 그것이 하나의 형상으로 이루어진 곳. 강남역에서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을까. 강남역에서 만난 한 사람, 한 사람을 점으로 둔 채 그 모든 점을 선으로 전부 잇는다고 한다면 대체 어떤 모습일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다.
강남역엔 그저 하룻밤의 유흥으로 끝난 인연도, 싱거운 데이트로 족한 인연도, 사랑의 시작을 함께한 인연도 그렇게 아무 일 없다는 듯 고요히 잠들어있다. 나의 젊은 날을 빈번히 함께 한 강남역. 그곳에서 함께했던 무수히 많은 인연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 내가 그들이 미워서, 혹은 그들이 나를 미워해서 손을 놔버린 관계들. 잿빛의 강남역을 생각하면 무언가 알 수 없는 상실감이 든다.
하지만 정말 우스운 건 지금 내가 강남역에 간다 할 지라도 이젠 나도 그 많은 얼굴을 다 기억하진 않는다는 거다. 이젠 나도 내 살길이 바빠서, 노쇠한 추억들에 잠겨있을 여유 따윈 없어서, 기타 등등…. 타성에 젖던 구간에서 마침내 벗어난 걸지도 모른다. 떠나려는 감성의 옷자락을 붙잡으며 내내 구걸하던 나인데. 구걸해봤자 돌아오던 건 값싼 동정심, 측은지심을 가미한 눈빛, 끊임없는 번민이었어서 그런 걸까.
결국 기억이든 추억이든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닌, 현재 나와 연결고리가 이어져 있는 사람만이 그 마음을 고마워한다는 것. 수명이 다 한 관계에서 끈질긴 기억력이나 추억을 그리워하는 마음 따윈 없느니만 못 할 것이다. 그러니 길거리를 걷기만 해도 온갖 추억이 채이는 강남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입을 꾹 다문 채 내게 놓인 앞길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것뿐. 그 많은 추억의 결과값이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