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쓰다

당신의 뒤꿈치는 안녕하신가요

by 최다은

추석 연휴, 평소엔 잘 신지 않던 닥터마틴 구두를 신고 외출에 나섰다. 역시나는 역시나. 사고 나서 몇 번 신지 않던 터라 길들일 틈도 없이 뒤꿈치는 그야말로 아작이 나고 말았다. 친구랑 와인 한 병을 기분 좋게 나눠 마시고, 휴일의 분위기에 취해 각자 소주 한 병을 해치우고 집에 가는 길. 그만한 취기에 취했기 때문에 뒤꿈치가 아프긴 해도 그다지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라고 나는 생각했다.


몸에서 나는 술냄새, 갈증, 두통에 선잠을 자고 나니 술이 좀 깼을까. 침대 패드에 닿아 있는 뒤꿈치가 그제야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아직 술이 덜 깬 아침, 뒤꿈치를 확인하자 구두에 닿는 부분이 그대로 까져있었다. 한동안 꼼꼼히 밴드를 붙이고 다닐 신세에 놓인 것이다. 특히 런닝을 하는 요즘 같은 때엔 조금만 신경을 쓰지 않아도 피를 볼 게 뻔했다.


다른 건 다 신경을 쓴다 쳐도 가벼운 외상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성격이라 밴드를 붙이고, 챙기는 걸 번번이 까먹는 나. 저번 주 목요일 즉흥적으로 한강에 간 그날도 나는 밴드를 붙이는 걸 미처 까먹고 말았다. 예정된 수순대로 반복적으로 운동화에 쓸린 뒤꿈치는 따가워지기 시작했고, 야외에 앉아 슬쩍 확인해보니 뒤꿈치는 물론 운동화 뒷부분까지도 피떡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나는 또 수술로 봉합한 부분이 벌어질세라 조심하는 환자처럼 밴드 붙이는 일을 혹독히 해야만 했다.



그리고 바로 오늘, 오늘은 여름에 산 새 컨버스를 여러 가지 이유로 신지 않고 있다가 드디어 첫 개시를 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끈을 헐겁게 매서 그런지 뒷부분이 계속해서 헐떡거렸고, 얼마 안 가 뒤꿈치 부근엔 희미한 따끔거림마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양말을 반쯤 내리고 뒤꿈치의 상처를 확인해 볼 수밖에 없었다. 확인 결과 다행히도 상처는 아무렇지 않았다.


다만 여기서 내가 놀란 사실은 내가 새 컨버스를 신지 않았더라면 뒤꿈치의 상처를 잊고 있었을 거란 사실이었다. 그러고 나니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몸에 난 상처든, 마음에 난 상처든 그 상처가 다 나았다는 명백한 사실은 내가 그 상처가 있었다는 사실도 잊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그러니까 사람이든, 사랑이든, 어떠한 상처든, 감정이든 간에 내가 잊었다고 말하는 건 사실은 그걸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는, 잊어버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닐까. 정말로 그것들을 잊어버렸다면 잊었다는 기억조차도 잊어버렸을 게 분명하니까.


그렇다면 지금 내가 잊지 못 한 사람, 사랑, 상처, 감정은 대체 얼마나 된다는 거지? 뒤꿈치의 상처 하나로 떠오른 생각이 이렇게 길어질지는 몰랐습니다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추억의 집합체, 강남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