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9시가 살짝 넘은 시간, 오늘 저녁 메뉴는 닭갈비와 소고기 뭇국, 각종 야채와 엄마표 고추장아찌다. 평소답지 않게 점심을 든든히 먹은 터라 몇 술 뜨지도 않았는데도 금세 배가 불러온다. 그때 마침 “아 맞아, 엄마가 너 줄라고 전복 사 왔는데 해줄게”라고 엄마가 말한다. 곧 달큼한 버터 내음이 온 주방에 퍼진다. 엄마의 사랑이 살포시 얹어진 쫄깃하고 구수운 전복버터구이. 배가 부른 것과 별개로 그 맛에 취해 나는 곧장 그 자리에서 금세 먹어치운다.
본가에 오면 좋은 점은 오로지 Realxing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세숫대야에 담가놓은 빨랫감, 식사를 마치고 난 뒤 쌓인 설거지,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들…. 그 모든 것을 비롯한 해야만 하는 일들을 본가에 오면 그저 다른 나라 얘기로 치부할 수 있게 된다. 밥을 다 먹고 난 뒤엔 시원한 사이다에 좋아하는 컴퓨터 게임을 해도 마음에 걸릴 게 전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난 늘 걷던 동네 역 주변 거리를 걸으며 예전과 다를 것 없이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 문득 이 평화로운 시간이 얼마나 갈까? 하는 물음에 골몰한다. 끽해봐야 5년? 길어봤자 10년? 점점 늙어가는 엄마 아빠의 얼굴이 이젠 눈에 자주 밟힌다. 1~2년 전에 찍은 내 사진만 봐도 내 나이가 보이는데. 흘러가는 세월을 어찌 모른 체 할 수 있을까.
무덤새는 새끼를 위해 무려 11개월 동안 둥지를 짓는다고 한다. 약 열 달 동안 태아를 품고 있는 인간의 임신 기간과 상응하는 기간이다. 그러나 새끼가 태어나고 나면 수컷은 자기 새끼를 알아보지 못해 적으로 간주한다. 새끼는 자기를 공격하려는 아빠를 피해 태어나자마자 도망쳐야 한다. 즉 무덤새는 태어나자마자 독립을 하는 셈이다.
이와 달리 인간은 엄마 뱃속에서 나와 별 일이 없는 한 부모가 죽을 때까지 교류하는 게 일반적인 형태다. 이는 포유류를 포함한 다른 종류의 동물들을 살펴봐도 보기 드문 사례다. 특히 요즘은 부모로부터의 독립이 점점 늦어지고 있어 인생을 90살 정도 산다고 가정했을 때 인생의 약 1/3을 부모와 같은 공간에서 사는 셈이다.
그러므로 세월의 흔적이 더해가는 엄마 아빠의 얼굴을 보고 어쩐지 슬픈 감정이 드는 것은 평생에 걸쳐 쌓은 유대감의 당연한 산물일 것이리라.
결국 시간의 야속함에 순순히 곁을 내어주기 전에 나는 내가 보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깨닫는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게 조금씩 변한다. 그럴지라도 누군가와 특히, 어렸을 적부터 면밀히 살을 맞대온 가족과의 시간은 충직하게 그 자리를 지켜줬으면 하는데. 그 마음은 도무지 어쩔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