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선 이런 대사가 나온다. “추억은 추억일 뿐이에요. 추억은 아무런 힘도 없어요.” 이 드라마를 처음 정주행했을 땐 이 대사를 완전히 이해하고 납득하기 힘들었다. 사람이란 살면서 만드는 수많은 추억을 좀 먹으며 살아가는 존재라고 생각했으니까. 특히나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과의 추억은 그만큼 소중하고, 내게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나는 나 자신을 항상 추억 속에 사는 사람이라 여기곤 했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내게 기억이라든가, 추억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예전만큼 내게 영향력을 끼치지 않게 되었다. 타성에 마냥 젖어있기엔 각박한 현실 때문일 수도 있고, 이미 지나가버린 것엔 미련을 두지 않으려던 마음가짐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단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생긴 뭔지 모를 초연함 때문일 수도 있다.
어찌 됐든 매일매일 주어지는 하루하루, 지금 당장 내게 놓인 현실에 집중하자 미련이나 그리움과 같은 단어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한편으론 뭔가 신기했다. 하나하나의 관계, 하나하나의 추억, 하나하나의 감정이 너무나 생생해서 그걸 그대로 글로 옮겨 적지 않고선 못 배기던 나인데.
결론적으로 “추억은 추억일 뿐이에요. 추억은 아무런 힘도 없어요.” 이 말을 지금 와서 다시 곱씹어보면 추억은 살아있는 관계에서 더 큰 효력을 발휘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내 삶에서 아무리 좋은 추억이었다 한들 그것이 누군가와 얽혀있는 추억이라면, 더군다나 그 사람과 이미 끝나버린 관계라면 정말 말 그대로 추억이 가지고 있던 힘은 사라져 버리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지금 내가 맺고 있는 오래된 관계들도 세어 보면 일일이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나와 수많은 추억들을 공유하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와 그들이 단순히 ‘추억’ 때문에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수많은 추억들과 함께 나눈 감정, 그리고 신뢰가 밑바탕이 되어 지금까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저 지나치기엔 아까운 추억도 결국 흘러가는 시간 앞엔 모두 무력해지고 만다. 그렇기에 내가 눈길을 주고, 사랑해야 할 이들은 어쩌면 ‘지금’ 내가 힘들 때 따뜻한 말 한마디, 그리고 다정한 위로를 건네준 이들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시간이란 참 덧없고, 그와 함께 감정이란 참 순식간이다. 단단히 잡아두지 않으면 언제든 흩어질 감정 앞에 사람들은 부단 애를 쓰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