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조립이랄 것도 없이 조금만 조작을 하면 로봇도 되고, 차도 되는 장난감을 참 좋아했었다. 시골에서 집으로 가는 길, 시내버스에서 한참 그 장난감을 만지며 놀던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언제 샀는지, 어디서 샀는지에 대한 기억과 그 장난감을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에 대한 기억은 그저 막연하면서도 그 장난감이 좋았던 기억만큼은 어찌 된 모양인지 또렷하기만 하다.
문 뒤의 서늘한 느낌이 좋아 일부러 그곳을 고집하여 양말을 신던 일, 내 몸집만 한 수건의 모서리 부분을 어루만진 채 잠에 들던 일, 즐겨보던 만화 영화를 한껏 찌푸린 채 감상하던 일….
지금은 어슴푸레한 기억의 숲에서 시간을 들여야지만이 떠올릴 수 있는 좋아함의 감각들. 돌이켜보면 난 항상 그랬다. 좋아하는 것에 그것이 왜 좋고, 얼마만큼 좋고, 어떤 게 좋은지 등의 이유를 하나부터 열까지 들어 뜯어보기보다는 그저 ‘좋다’는 감정에 한없이 빠져있는 사람.
그렇기에 “그게 왜 좋아?”라는 질문에 “그냥”이라는 답은 얼핏 성의 없고 무책임해 보일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좋다는 건 그만큼 순수하고 진심이란 말이 될 수도 있다. 거스를 수도 없을 만큼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결국 기억해 내는 건 그것을 좋아했다는 감각 그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