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던 학교에서의 졸업, 그리고 새로운 학교로의 입학. 그런 일들이 인생에서의 대소사라고 여기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결혼으로 인생의 제2막을 여는 친구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는 요즘이다. 반쪽이라 여기는 이를 만나 평생을 약속하고, 나와 사랑하는 사람을 반씩 닮은 아이를 낳아 기르는 건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인생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해야 할까.
같은 반 안에서 각자의 사물함 번호를 지니고 있던 때만 해도 이야기의 화제 따윈 그다지 성가신 고민거리는 아니었다. 아니, 거기서 더 가지 않아도 아직 학번이라는 숫자가 나의 고유성을 대표할 때만 해도 그렇다. 엇비슷한 가치관, 관심사, 고민거리, 삶의 방향…. 우리는 그저 같은 물결을 타는 친근한 서퍼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였을까. 사회라는 영역에 발을 들이고 나서부터였을까? 그냥 같이 있는 것만으로 재미있고 흥분되던 시절은 온 데 간 데 사라지고, 같이 보낸 시간의 응고에 맞게 친분을 유지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이 들기 시작한 건. 그 혼돈의 과정 속에 소리도 없이 자취를 감춘 인연들도 여럿.
예전부터 보편적인 삶에 거리감을 둔 탓에 내가 그리 별난 사람인가? 철이 안 들어서 그런 건가? 하는 자기혐오, 의문, 혼란스러움에 고개를 갸웃거린 것도 여러 번. 그러나 이제는 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들이 아닌 것처럼 나 또한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 세상을 소화하고 있다는 뿐이라는 걸.
주파수가 제대로 맞지 않으면 지지직 거리는 소음에 디제이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것처럼. 알고 지낸 세월과는 상관없이 내가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하는 건 단지 지금 이 순간 나와 그들의 주파수가 맞지 않는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한편으론 저 너머엔 나와 주파수가 맞는 사람들이 있는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할거란 강력한 믿음을 가지곤 한다.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보편적인 흐름과는 일부러 동떨어진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각자가 살아가는 속도와 방향을 인정해 주고 존중해 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모두들 자기만의 주파수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갈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