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사람의 양면성, 혹은 다면성에 대해 곱씹어 보게 된다. 누구에게나 보통의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상대에 따라 천사와 악마를 넘나드는 편차가 심한 사람 또한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자식이자, 친구이자, 연인이자, 부모이자, 직장 상사이자 동료, 후배, 그리고 아는 누군가로서. 사람은 삶의 자리마다 서로 다른 얼굴을 걸치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 많은 역할을 한결같이 품위 있게 감당하는 이는 과연 얼마나 될까.
결국 인간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전 연인에게는 잔혹한 기억으로 남더라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장 따뜻한 위로로 기억되는 것처럼. 그래서 나에게는 차갑고 잔인했던 사람이 타인에게는 한없이 다정한 모습으로 비춰질 때, 문득 그 이면에는 어떤 얼굴이 숨어 있을지 궁금해진다.
나 또한 낯을 많이 가리는 탓에 친한 이와 그렇지 않은 이 사이의 간극이 크다. 그럴 때마다 내 안의 편차는 어디까지일까 가늠해 보게 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마음이 열리는 순간은 단순하다. 한 번 더 미소 지어 주는 사람, 한 번 더 손 내밀어 주는 사람에게 자연스레 마음이 기울기 마련이다. 그것은 억지로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삶의 질서 같은 것일 것이다.
와인 두 잔이 남긴 여운 속에서- 그저 사소하지만 어쩐지 집요한 생각에 잠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