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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쓰다

영원하고 싶다

by 최다은

내가 가진 젊음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시절

토익 공부를 핑계로 강남역을 제집 드나들던 시절

묘한 공기 속 주고받던 은밀한 눈짓

청춘을 변명삼아 비운 소주병들

무식하게 피워대던 담배개비들

우리는 그때 도대체 무얼 믿고 영원이란 말에 그리 쉽게 베팅했을까.

그저 짙은 눈빛을 주고 받는 것만으로

소주잔을 앞에 두고 시시껄렁한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

캄캄한 겨울 밤공기를 함께 들이내쉬는 것만으로

그리 쉽게 영원을 약속했나.

그게 무엇이 됐든, 여전히 영원을 꿈꾸는 나로서는 한때는 전부였던 조악한 기억들마저 희미해지는 것만 같아 괜스레 씁쓸해진다.

영원하고 싶다.

‘사랑해’라는 말 뒤에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반사적으로 ‘영원히’가 따라오던 그 시절처럼

영원하고 싶다.

나에게 기대하는 게 야릇한 하룻밤이든 영원을 빙자한 사랑이든

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꺼지지 않던 허무를 진득하게 채우던 그 숱한 밤처럼

영원하고 싶다.

사랑에 빠질 때마다 이번만큼은 마지막이길 바라는

늘 한결같은 마음처럼

희망이란 녀석을 볼모잡아 또 한 번 모든 걸 잃는다 하여도

뼈아픈 상실감과 허무함에 또 한 번 몸부림친다 하여도

식어버린 애정의 온기에 또 한 번 한숨 쉬고 눈물짓는다 하여도

그저 영원하고 싶다.

그저

영원히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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