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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igma Feb 15. 2022

귀촌 준비 첫걸음, 주거지 정하기

우리만의 전원주택을 짓기로 하다



우리 부부가 정한 귀촌지는 바로 경북 '영덕'이다. 영덕은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이자, 나의 가족들 친정 아빠와 남동생 내외들이 함께 사는 곳이다. 나는 대학교에 진학하기 전까지 쭉 영덕에서 자랐던 터라 영덕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었다. 오히려 새로운 곳에서 삶을 개척하고 싶기도 했던 것 같다. 나와 다르게 서울이 고향인 Paul은 나의 고향이자 가족들이 있는 영덕을 너무나 좋아해줬고, 조금이라도 네트워크가 있는 영덕으로 가길 원했다. 점점 늙어가시는 양가 부모님들의 노후도 가까이에서 함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시부모님께서도 은퇴후 노년은 영덕에서 보내시기로 합의하고 우리의 귀촌지를 영덕으로 정했다. 


우리 부부가 계획한 귀촌시기인 올해 9월. 우리가 먼저 영덕으로 귀촌을 한 후, 시부모님께서도 1-2년 내 은퇴 후에 영덕으로 귀촌하실 계획을 세웠다. 본인들의 고향이 그립기도 하실텐데 선뜻 며느리의 고향으로 귀촌을 정하시고, 사돈과 이웃사촌으로 지내기로 하신 시부모님의 든든한 응원 덕분에 조금은 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귀촌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아! 나에겐 귀향이 더 맞을 수도 있겠다. 




서울살이를 하며 늘 불안정했던 주거문제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귀촌하면 뭐해서 먹고 살지'하는 고민보다 '어디서 살지'하는 고민을 더 먼저, 더 많이, 더 진지하게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막상 귀촌의 삶을 적응하기 어려워 금방 도시로 가고 싶을 수도 있으니 1-2년 정도 아파트에서 전세살이를 먼저 시작해보라고 권유하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들의 진심어린 조언은 우리 부부에겐 "응~ 아니야~" 로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하루를 살더라도 우리가 꿈꾸던 삶을 살아보기로 했다. 


넓은 마당이 있는 전원주택에서의 삶을 꿈꿔왔다. 서울에서 전세살이를 하며 늘 키우지 못했던 반려견을 키우며 아이와 함께 마당에서 뛰어놀게 하고 싶었다. 마당에 텃밭도 가꾸어서 신선한 재료로 식사도 만들어 먹는 리틀포레스트의 한장면도 연출하고 싶었고, 그늘에 앉아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커피도 마시고 싶었다. 가끔씩 도시에서 놀러오는 지인들이 있다면 웨버를 꺼내서 야외 바베큐 파티도 열고 싶었고, 방 3개 화장실 2개 거실, 주방으로 이루어진 틀에 박힌 아파트 구조의 집이 아닌 우리만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지어진 우리를 위한 집에 살고 싶었다. 


사실 나는 시골에서의 삶은 실상 그렇게 아름답지만 않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안다. 태어나서 20년동안 시골에서 자란 나였기에 넓은 마당을 유지하려면 매일 같이 잡초를 뽑아주고 잔디를 관리해줘야한다는 사실도, 여름이면 벌레와의 전쟁이 벌어질 것이고 개구리 소리에 잠을 청하기도 어려운 날들이 많다는 사실도, 영화 리틀포레스트 같은 장면은 온데간데 없고 뙤약볕에 텃받을 가꾸는 일에 지쳐 쿠팡 로켓프레시가 그리워 질거란 것도 안다.  


하지만 꿈꾸던 삶과 실제 귀촌의 삶은 조금 다를지라도 그 안에서 우리만의 삶의 루틴을 찾고,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갈 것 또한 알기에, 그 과정이 우리 부부와 곧 태어날 아가에게 좋은 추억이 될것이라 믿기에 우선 우리가 '꿈'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에 근접하게 살아보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를 위한 집을 지어야만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 서른살 나이에 건축주가 되기로 했다. 현재 서울에서 살고 있는 전세집은 3억짜리 15평 빌라이다. 같은 돈으로 더 큰 평수, 더 나은 집으로 가기만 해도 '개이득' 아닌가? 그렇게 우리의 미션은 3억으로 땅사고 집짓기가 되었다. 

(물론 3억 모두 내 돈은 아니다. 은행의 크나큰 도움을 받아야한다. 이후 대출과정도 이야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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