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이 넘는 길고 긴 오디션을 통과해, 한국관광공사의 국내여행코스 공모전 트래블리그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예선을 통해 1300명 중 100명을 모집하고, 워크숍 후 1차 오디션을 통해 60명을 선발, 그 중 2차 오디션을 걸쳐 30명을 선발하고 최종 피티를 통해 5팀에게 상을 주는 치열한 과정이었다. 코로나와 태풍 때문에 일정이 여러번 연기되어, 여름과 가을동안 치열하게 공모전에 매달렸었다.
트래블리그 공모전에는 로컬, 사회적 가치, 나만의 테마라는 세 가지 공모 테마가 있었다.
나는 사회적 가치 테마로 응모했는데, 정확한 주제는 "오직 재생공간만 탐방하여 1970년대 역사를 아는 여행" 이었다.
웬 1970년대 역사? 뜬금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일단 여행코스의 발단은 '재생공간'에 대한 내 관심이었다. LH 도시재생 공모전에서 수상하고, 서대문구의 문화적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참가할 만큼 나는 재생에 관심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옛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재생 공간'이 주는 느낌은, 특별했다. 분명 나는 2020년에 살고 있는데, 공간에 들어서면 옛 이야기를 들려 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재생 공간만 다니는 여행'으로 예선을 통과했다.
공간이 숨겨놓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아
본선 진출 후, 워크숍에서 멘토님이 더 구체화해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그때부터 내 고민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공간들을 묶어볼까? 생각했다. 어떤 컨셉으로? 어떤 테마로? 막막했다. 보통 여행지를 소개할 때 '창고가 문화공간으로 변신한 사례 3곳'이나 '성수 도시재생 여행'등 지역별로 묶기 마련이다. 전자처럼 하자니 여행코스라기보다는 잡지의 여행지 소개테마에 맞는 것 같고, 후자로 가자니 이미 각 구에서 마련해놓은 코스가 있더라.
그래서 엑셀파일에 내가 수집한 서울의 재생 공간들을 하나하나 리스트업해보기 시작했다. 공간의 이름, 위치, 관련있는 시대, 시대와 관련있는 사건, 여행자에게 어떤 느낌을 줄 수 있는지 등등.
그렇게 정리하고 기록하다 보니 정미소, 창고, 인쇄소, 목욕탕 등 공간들의 공통점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산업화/도시화 시기와 관련이 많다는 사실. 더 정확하게는 도시화가 급속도로 발전한 1970년대를 품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유신 체제와 같은 큰 줄기의 역사도 중요한 역사지만, 산업화가 태동했던 을지로, 창신동 봉제공장의 여공 등과 같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서울 곳곳의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보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2030을 위한 청춘여행코스 공모전이니까. 너무 무겁게 다가가지 않도록 노력했다. 명문고가 강남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과외방이 성행했던 역사가 있고, 지금은 재미있는 놀거리들이 많은 돈의문박물관 마을. 그리고 정겨운 목욕탕의 느낌을 담으면서도 2030의 인스타그래머블한 사진 욕구에 부합하는 귀여운 눈사람 라떼가 있는 행화탕 등의 장소를 추가했다.
그렇게 '뉴트로로 재생하는 1970 서울여행' 코스를 기획하게 되었다. 재생에는 도시재생의 Regenerate과 그 시절을 Replay 한다는 의미가 모두 담겨있다.
매끄러운 코스를 위해 교통편과 동선, 체력 배분(걷는 시간 등)을 고려하며 코스를 짜는 것은 물론이고,
조금 더 생동감있는 스토리텔링을 위해 노력했다. 먼저 <을지로 수집>, <다시, 을지로> 등의 서적을 읽으며 여행지가 있는 지역의 역사를 탐독했다. 그 후 상징성있는 굿즈나 미션을 고안하고 싶어 70년대 생활상에 대해 전반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논문과 서적을 통해 당시 시대의 생활상을 깊이 파고들었다.
그런 다음, 갓 서울에 상경한 소녀가 구 서울역을 개조한 문화역서울 284 앞에서 여행을 시작하는 설정을 부여했다. 각 여행지마다 관련있는 인물을 만나는 스토리텔링을 고안하면서 말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
나는 스토리텔링을 좋아하는구나
막연하게 관광/도시 분야에 관심이 있다고 인지하는 것과, 내가 그 분야에서 어떤 일을 좋아하고, 또 하고싶어하는지 파악하는 건 많은 차이가 있다. 나는 공모전을 통해, 관광의 많은 분야 속에서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익숙한 장소에서, 몰랐던 이야기를 발굴하는게 재미있었다. 그냥 나열하는 것보다는, 더욱 생동감있는 이야기를 부여하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딱딱한 역사 교육보다는, 그냥 누구라도 관심을 가질 법한 재미있는 방식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미션 형식을 부여해 '카카오톡 방탈출 게임'이라는 언택트 미션을 추가했다. 게이미피케이션 활용 관광 콘텐츠에 평소 관심이 많았다. 역사를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이자 여행의 한 방법이라는 생각때문이었다. 평소 눈여겨보았던 콘텐츠를 참고해, 시국에 맞는 '카카오톡 방탈출' 설정으로 역사를 자연스레 익히며 여행하도록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는 나만의 온전한 여행코스를 기획하고 스토리텔링하는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몇 번의 오디션과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3등을 수상한 기쁨은 정말 컸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몇 년동안 관심을 가져온 주제인 '재생'과 관련한 코스로 색다른 이야기를 전달했다는 뿌듯함이 컸다. 모두 다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이뤄낸 성과고, 그 과정에서 또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무엇이 부족한지 등 '나'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