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여행의 목적지는 공주 제민천이다. 하지만 공주행 기차를 타는 대신, 가볍게 지하철을 타고 연남동으로 향한다. 익숙한 연트럴파크를 따라 걷다가, 오늘의 목적지를 발견하고는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선다.
나는 오늘, 공주 제민천의 마을스테이를 연남동으로 옮겨온 전시를 통해 공주를 여행하기 때문이다.
마을의 개성있는 가게들이, 하나의 호텔처럼
마을스테이란 지역의 숙소, 맛집, 카페, 서점 등 마을에서 머무는 경험을 통해 마을을 하나의 호텔처럼 경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마을에서 머물며, 프랜차이즈보다는 마을 가게를 이용하고, 마치 지역 주민처럼 시간을 보내보는 것이다.
마치 호텔에서 가장 먼저 체크인을 하듯이, 처음 전시회에 입장하면 컨시어지같은 공간에서 공주 제민천과 만나게 된다. 거점 숙소 역할을 하는 한옥 봉황재와, 전반적인 마을스테이에 대한 안내도 해주신다. 그리고 팜플렛, 지도, 전시에 참여한 로컬 크리에이터의 제품 등 각종 기념품을 구입할 수 있었다.
특히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바로 '마을스테이 어메니티' 였다. 마치 진짜 호텔의 어메니티처럼, 수건, 연필, 컵, 밤, 비누까지 알차게 구성되어 있었다. 이 어메니티 세트만 있다면 집에서도 마을스테이를 하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자, 체크인이 끝났다면 이제 호텔에서 나와 동네를 만나볼 시간이다. 컨시어지처럼 마련된 첫번째 공간에서 벗어나 제민천의 마을 호텔을 본격적으로 탐방하기 시작했다. 숙소 근처 예술 공방을 구경하듯, 화실 소규모와 아트랫폼이라는 공주의 지역 예술을 만나본다.
여행지의 로컬 카페에서 느끼는 여유는 필수. 공주 특산물을 기반으로 한 식료품을 만드는 얌참의 디저트는 특색이 있어 당장이라도 먹어보고 싶었다. 실제 여행이었다면 오감으로 먹고 마시며 공주를 경험했을 텐데. 제한적인 방식이라 구경밖에 못 하는 것은 역시나 아쉬운 부분이다.
그 뒤 이어지는 코스도 흥미롭다. 마을 고양이들이 모인다는 대통사지 당간지주를 포토존으로 구성해놓아, 그 풍경을 상상할 수 있었고. 공주대 등 많은 학교들이 모여 있었고, 하숙집이 많았다는 과거에서 영감을 받아 옛날 학생들이 썼을 것 같은 가죽제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공주는 6,70년대 건물이 많이 보존되어 있어, 원도심 투어를 하기에 제격인 장소라고.
공주 제민천 마을스테이 전시를 경험하면서 다시 한 번 '소소한 역사'의 힘을 느꼈다. 이름난 관광지의 역사말고, 각 지역의 소소한 이야깃거리들도 충분히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점점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지역 주민처럼 살아보기와 같은 각 지역의 일상을 느껴보는 여행이 점점 주목받는 요즘에는, 지역의 크고작은 이야깃거리들을 발굴해 콘텐츠로 만드는 것이 그 '일상'을 더 재미있고 뻔하지 않게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공주에서 하숙집이 많았다는 이야기나 당간지주에 모이는 길고양이와 같은 소소한 역사들이, 공주 제민천만의 이야기와 풍경을 상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일본식 가옥을 개조해 만들었다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문학관을 지난 뒤, 공주 제민천의 문화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는 로컬 책방 가가책방에 다다른다. 그 지역의 고유한 이야기를 큐레이션하는 독립서점을 구경하듯이, 가가책방에 놓여져 있는 로컬 책방 인터뷰 이야기를 읽어본다. 이 공간에는 곡물집과 소소목공방 등 다른 공주의 로컬 브랜드들의 제품도 경험할 수 있었다.
로컬 책방에 대한 책을 가볍게 읽고 나서, 테이블에 앉아 색연필로 쓱쓱 방문 소감을 적고 있자니 정말 공주의
로컬 서점에 방문해 교류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관람자의 참여를 적극 권장하는 분위기가, 지역과의 소통을 이끌어내는 마을스테이의 취지와도 잘 맞았다.
전시회가 여행의 느낌을 낼 수 있을까?
제민천 마을스테이 전시를 경험하면서 감탄했던 부분은, 개성이 뚜렷한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로컬의 자원을 활용해 얼마나 매력적인 제품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였다. 공주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너무 맛있어보이는 얌참의 디저트, 여유로운 공주 제민천을 더욱 퐁당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가가책방, 곡물에 대한 풍부한 식견과 멋진 디자인으로 눈길을 끄는 곡물집 등. 로컬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재미있었을테고, 관심이 없던 사람에게도 그 매력을 전달할 만한 알찬 브랜드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런 매력적인 로컬 상품으로 지역을 옮겨왔다는 점은 다른 전시와 차별화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봉황재, 얌참, 가가책방 등 실제 공주 제민천의 로컬 장소의 물건들로 그 장소를 상상할 수 있게끔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로컬 굿즈를 큐레이션하고 소개하기에는 정말 최적화되어있던 전시회였지만, 여행의 느낌을 느끼기에 부족했다는 점은 아쉬웠다. 물론 '여행의 경험'을 전시회에서 다 표현하기는 당연히 어렵다. 전시는 여행의 대체제가 아니다. 또 다른 여행의 방식이라고는 하나 보완재일 뿐이다.
하지만 소리, 향기 혹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 좀 더 몰입도를 높였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마을스테이를 경험'하는 취지가 더욱 잘 살지 않았을까? 매력있는 로컬 제품들을 전시하는 것도 좋지만, '제민천 마을을 경험하다'라는 느낌은 조금 아쉬웠다. 제품을 구경하는 것 외에 관람객이 체험하고, 몰입해서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면 여행하는 기분이 강화되었을 것 같다.
그리고, 전시회를 본 뒤 공주 제민천을 실제로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을 심기에는 충분했다. 내가 공주 제민천에 방문한다면 이런 하루를 보낼 수 있겠구나- 라는 상상이 절로 그려졌고. 공주 제민천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겨 코로나가 잠잠해진다면, 마을스테이를 통해 소소한 역사와 기쁨을 알아가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