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여행이 내게 찾아왔다. 똑똑. 청주가 ㅇㅇ씨를 찾아왔습니다-라고 생각해보자. (물론 택배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상상만 해도 재밌다. 나는 문을 열고, 내게로 온 청주를 맞이한다. 떨리는 마음으로 언박싱을 하는거지. 청주 이야기를 담은 책을 읽으면서 상상해보고, 청주 근대건축물을 담은 카드게임을 해보는 거다.
다들 하나쯤 그런 브랜드 있지 않은가. 랜선에서 팔로우해서, 랜선으로 찾아보고 좋아하게 되는 그런 브랜드.
로컬 브랜드/크리에이터의 작업을 좋아하는 이른바 '로컬 덕후'인 나는, 청주의 로컬 크리에이터인 원더러스트의 작업을 n개월 동안 인스타그램에서 지켜봐왔다. 그러다가 문득, 청주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원더러스트는 어떤 동네에서 저런 재미난 작업을 하는 걸까? 청주에는 어떤 매력이 숨겨져 있을까?
그렇게 막연히 청주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만 하고 있다가, 원더러스트의 온라인 기획회의에 참여한 선물로
청주가 담긴 로컬 박스를 받아보게 되었다! 랜선 덕질을 하다가 랜선 선물을 받아보게 된 셈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아서 무엇이 나올지 모른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인생'을 '여행'으로 바꿔도 말이 되고, 오늘은 '로컬 박스'로 바꿔도 괜찮겠다. 왜냐하면 이 청주를 담은 로컬 박스가 내게 어떤 청주를 보여줄지 매우 두근거리기 때문이지. 그럼 풀어볼까. 떨리는 마음으로 박스를 열어보니 카드, 원더러스트 로고가 새겨진 물티슈, 텀블러, 그리고 책이 보였다.
보통 우리는 여행지를 어떻게 감상할까? 직접 그 곳에 가서 살펴보고, 때로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기도 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머리로 기억한다. 이렇듯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는 하지만, 코로나 시대에는 새로운 방법도 있다!
근대건축물, 근대역사를 좋아하는 내가 로컬 박스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바로 이 <모던 타임즈>였다!
청주의 근대 유산을 카드게임으로 만들어 멀리서도 청주를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게임이다. 근대유산의 특징인 건축의 아름다움과 특색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굿즈나 엽서와 달리 소장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이 새겨진 카드로 게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이색적인 재미가 있었다!
지역을 알리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변화하고 있다. 전통적인 도보 투어뿐만 아니라 문화자원 굿즈, 엽서, 야외 방탈출 게임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카드게임'은 참 특별한 방법이다. 물론 코로나 시대에 게이미피케이션 관광이 발전한 것은 아니고, 그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더욱 가속화될지도 모르겠다. 비대면 방식에, 색다른 여행법이니 말이다.
여행을, 지역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여행이 사라진 시대인데, 여행은 더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곁으로 찾아온다. 내가 '코로나 시대의 여행'이 진화하는 방식을 기록하고, 탐구해봐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다.
로컬 박스에는 세 권의 책이 배달되어 왔다. 표지부터 은은한 파스텔톤이 참 예쁘다. 책의 내용은 굉장히 다양한데, 갑질 사례 연구집, 단편집 그리고 로컬 기록물에서 포착한 단어로 시를 창작한 프로젝트를 받았다.
<을의 밤>은 특히 지역기록화작업물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유명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일상, 우리의 지역을 기록하는 <아카이-북> 프로젝트의 일환이었기 때문이다. 전에 나도 이런 가치를 바탕으로 아카이빙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공감이 갔다. <을의 밤>을 읽으면서는 같이 분노하고, <조각시>를 읽으면서는 단어의 다양한 변주를 감상했다.
원더러스트의 로컬 박스에는 3가지 테마가 있었다. 카드게임, 로컬 아카이빙, 그리고 필름카메라였다. 또 다른 박스를 받은 사람은, 수암골처럼 청주의 자원을 청주 지역민들이 직접 기록한 책을 받게 된다. 어쩌면 한 걸음 멈춰 서서 지역이 우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지- 제 3자가 아닌 주민이 바라보는 지역은 어떤 모습인지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당신의 일상을 여행합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텀블러와, 원더러스트 로고가 새겨진 물티슈도 여행에 꼭 필요한 아이템이다. 지속가능한 여행을 위한 텀블러를 챙겨 청주로 떠날 날이 기다려진다.
원더러스트 외에도 여행을 보내주는 시도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벌어지고 있다. 문체부가 한국관광개발연구원과 출시한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지역들의 로컬 브랜드 제품을 큐레이션한 '집콕여행꾸러미'도 컨셉이 참 재밌다. 예를 들어 부산, 거제, 통영, 남해 권역의 '집구석 바캉스' 여행꾸러미에서는 캔들, 남해바다 배쓰밤과 통영이랑 나전칠기 키링 세트 등을 담았다. 와우, 남해바다 배쓰밤 풀어놓고 캔들까지 켜면 방구석 남해 여행 뚝딱이다!
단순히 여행을 보내준다는 컨셉만 재미있는 게 아니라 개성있는 지역 특산물, 로컬 브랜드를 알리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셈이다.
뿐만 아니다. 코로나 전인 2018년에 일찌감치 이런 센스있는 시도를 한 곳도 있다. 바로 도시에서 창의적인 시도를 주도하는 어반플레이의 '로컬 플레이 키트'다. 로컬 큐레이터의 이야기와 로컬 브랜드 제품 등을 보내주는 서비스다. 지역을 잘 알고, 오랫동안 머물렀던 로컬 큐레이터의 이야기와 장소를 콘텐츠로 만들어 지역을 제대로 담았었다. 어반플레이와 원더러스트 모두 물건뿐만 아니라 지역의 이야기를 전해줬던 셈.
이렇듯 여행 박스는 단순히 여행을 경험하는 다른 방식을 전해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지역의 이야기를 담고, 지역의 가치를 담는다. 즉 여행을 소비하는 다른 관점을 제안하는 셈이다. 어쩌면 코로나를 계기로 단순히 명소를 보고 즐기고 소비했던 여행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지역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 코로나 시대의 여행 변화 탐구기가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magazine/travelincov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