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우리를 떠났다. 하지만 여행은 자연 속 여행, 랜선 여행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고 있다. 각양각색 코로나 시기 여행의 모습을 기록하며, 어떤 여행이 필요한지 그리고 여행이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지 찾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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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이야기는 윗글 참조.
코로나 시대의 여행 중 이번에 제안하고자 하는 여행은
'사찰에서 잠시 쉬어가는' 여행이다. 그리고 평소 여행과는 전혀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체험하는 여행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나는
맛집 대신 공양, 맥주 대신 책, 수다 대신 생각
을 경험했다. 뭐? 나는 맛집이랑 맥주 그리고 친구와 함께하는 여행이 좋은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번쯤은 사찰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해보는 것도, 참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끝까지 읽어보면 말이다.
사실 템플스테이는 몇 년 전부터 인기가 있었지만, 난 별로 끌리지 않았었다. 모름지기 내게 여행이라는 건 그런 것이었다. 채식보다는 맛집이나 술집을 가는 게 좋았고, 디지털 디톡스보다는 내 여행을 실시간으로 SNS에 올리는 그런 여행이 좋았다. 그런 내게, 템플스테이는 너무 정적인 여행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코로나 시국이 찾아왔고, 합천에서 일주일을 여행할 기회가 생겼다. 여행 정보를 찾아보다 해인사를 발견하고, 지금이야말로 템플스테이에서의 쉼이 진정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크인을 하기 전, 먼저 해인사 북카페를 찾았다. 마음 편안해지는 동그란 사찰뷰 창가에, 불교 서적을 비롯한 책을 읽을 수 있는 곳. 따뜻한 오미자차를 홀짝이며 책을 읽다, 때때로 행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해인사의 모습을 구경했다.
오리엔테이션을 하며 사찰 투어를 했다. 팔만대장경이 어디에 있고, 어디서 예불을 드리고 공양을 드리는지 곳곳을 소개해주셨다. 그럼 이제, 공양을 드릴 시간이다.
생각해보면 그렇더라. 우리는 여행에 가면 온갖 맛집을 다 찾아간다. 물론 맛있는 거, 당연히 좋지. 여행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왁자지껄한 수다나 완벽한 구도를 위한 몇 번의 인증샷 없이 꼭꼭 씹어먹는 행위에만 집중하고 있자니, 그냥 한 번쯤은 먹는 것 그 자체에 감사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양을 마친 뒤 사물 참관을 하러 갔다.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중생을 위해 소리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파한다고. 너무 추워서 오들오들 떨면서도, 조용한 해인사에서 북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왠지 모를 평온감이 밀려온다. 이런 마음의 평화를 줌으로써 부처님의 가르침을 준다고 한 걸까?
차를 즐기는 것은 곧 여유를 즐기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느긋하게 시간을 들여 마셔야 하는 차보다는, 바쁠 때 급하게 에너지를 수혈할 수 있는 커피가 익숙하다. 그렇다면 스님과의 차담을 통해 이야기와 차를 모두 즐겨 보는 건 어떨까. 차를 마시며 스님이 되기 전 속세에서 치열하게 청년 시절을 보냈던 경험부터, 몇 주 동안 잠을 안 자고 수행한 이야기 등 끊임없이 나오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차를 기다리는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을 테니.
이제 하루를 마무리할 시간이다. 보통 숙소에서 맥주를 즐기며 새벽까지 달리다 여행의 마무리를 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컴컴한 방 안에서 책상 위 불빛 하나 켜놓고 천천히 불교 서적을 읽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도 없는 깊은 산속에서,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가르침을 읽고 있자니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우리는 항상 욕망하면서 산다. 꿈을 꾸고, 앞을 향해 달린다. 코로나로 인해 집콕을 하면서 쉴 기회가 더 많아진 것처럼, 조용한 가야산 한가운데에서 읽은 이야기들은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그 어느 곳에서도 대체할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
다음 날 아침,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세미나실로 달려가 인경 체험을 했다. 팔만대장경의 한 페이지를 직접 새겨보고, 옛날 방식으로 책도 만들어보는 재미있는 구성이었다. 책 속에는 명상을 위한 가이드 등의 콘텐츠가 포함되어 있어서, 집에 와서도 해인사에서의 경험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해인사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기에 팔만대장경을 내 눈으로 보는 것처럼 좋은 게 있을까? 들뜬 마음으로 직접 팔만대장경을 보러 갔다. 그 자체로도 신기한 경험이었지만, 막상 나는 돌아오는 길에 스님들이 예불하시던 소리가 더 기억에 남는다. 거세게 부는 바람 소리와 함께 고요히 들려오는 예불 소리. 우두커니 서서 머리카락을 휘젓는 바람을 흠뻑 맞으며, 그 소리를 계속 듣는 시간이 참 좋았다.
우리 인간들은 코로나 때문에 예상치 못한 성찰의 기회를 얻었다. 관광객이 없는 해변이 얼마나 깨끗해졌는지를 보며, 인간이 지구에게 너무 가혹 행위를 했음을 점점 깨닫게 되지 않았나. 이런 깨달음 뒤 이제 더더욱 환경, 비건 등 지속 가능한 여행을 위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때에, 지속 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이자 여행을 경험하며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사찰 여행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비워보고, 절제하고, 쉬어가는 여행을 직접 경험해보는 거다. 어쩌면 지속 가능한 여행을 위한 첫걸음이 될지도.
* 해당 여행은 거리두기 1단계 당시 체험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