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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다은 Apr 16. 2024

술은 술이 아니다. 약이다.

술이 치료해 준 나의 마음

정신과에서 알코올 중독을 고백하고 들은 이야기는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선 3년간 금주를 해야 합니다."였다.

3년 금주라니. 난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만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다. 도저히, 정말로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 같았고 그러면 나는 이 지긋지긋한 술통 속에서 계속 지내야 한다는 선고처럼 들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마음은 어떡하나요?


TV에서 사람들은 힘들 때, 우울할 때 술을 찾았다. 다행히 술을 잘 마시는 축에 속했던 나도 그렇게 했다.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던 나는 집회가 끝나면 술을 마셨다. 뒤풀이를 하며 같이 집회에 간 사람들과 소회를 나누기도 했고 지리멸렬한 세상에 분노하며 술을 들이켜기도 했다.

조금 아쉬우면 집에 가는 길에 더 사서 마셨다. 나는 룸메이트가 없었던 때가 없었고, 가장 오래 산 룸메 역시 함께 집회에 가던 친구였기에 같이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술을 숨기기 시작한 건, 우울증 때문에 그런 모든 활동을 다 멈춘 뒤였다.

처음 우울증 증상이 세게 왔을 땐 침대에서 일어나질 못했고, 숟가락을 들지 못했다. 말 그대로 물리적인 힘이 없었다. 그간 우울증 환자들을 보며 못 일어난다는 게 '무엇도 하기 싫어서'라는 걸 의미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정말 힘 자체가 없었다.


유일하게 힘을 낼 때는 술을 사러 갈 때였다. 제정신으로 있기가 힘들었다.

힘없이 바닥에 누워있다 보면 완벽에 대한 집착, 친구에 대한 질투, 가족에 대한 원망. 모든 생각들이 이불처럼 내 위에 쌓여갔다. 그런데 술을 마시면 괜찮았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을 비로소 드러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오랜 세월 참고, 참고, 참았다.

집이 어려우니 참았고, 엄마아빠가 싸우니 참았고, 오빠가 문제를 일으키니 참았다.

"뭐 먹을래?" 물어보면 "다 좋아."라고 했다. 그러면 어느샌가 부모님은 "너는 참 줏대가 없다."라고 했다.

그게 억울해도 참았다. 난 정말 다 좋았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누구나 예상하다시피 괜찮지 않았다.

나의 진로를 놓고 "너 때문에 죽고 싶다"는 엄마를 두고 난 괜찮지 않았다.

나보다 뛰어난 친구가 집회에서 발언을 하는 것을 보고 난 괜찮지 않았다.

괜찮지 않은 것을 괜찮다고 하면서 나는 정말 괜찮지 않아져 갔다.


학생운동에 흥미를 느낀 것도 '구호'를 외칠 수 있어서였다. 처음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옳은 것을 내 입으로 그렇게 크게 외치는 것은. 거기선 크게 외칠수록 칭찬을 받았다.

술도 같았다. 술을 마시면 갑자기 나는 다 말할 수 있고 다 쓸 수 있게 됐다.

엄마한테 그만하라고 문자를 남길 때도, 내가 열등감을 가진 친구에게 원망을 쏟아낼 때도 술은 내 곁에 있었다. 술은 그렇게 날 치료해 갔고, 날 망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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