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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다은 Apr 16. 2024

사랑을 위해 금주.

모든 우울증 환자가 알코올 중독은 아니지만, 거의 모든 알코올 중독자들은 우울증 환자다.


시작은 “통일선봉대”였다. 2019년에 여러 학생운동 단체가 모여 부산에서 서울까지, 통일을 위한 활동, 집회 등등을 하게 됐었다.

옛날 운동권 선배들은 8월 15일, 광복절이자 주권을 빼앗긴, 그날 전후로 통일선봉대 활동을 활발히 했다는데 난 처음으로 참여를 했었다. 


두려웠다. 사실 잠자리 바뀌는 걸 힘들어하기도 하고, 화장실 위생에 신경을 많이 쓰는 성격이라 그게 여의치 않을 환경이 엄두가 안 났다. 

바로 이전 연도에 참여한 내 룸메가 거기선 참여자들의 사기가 저하되지 않게 선배들이 먼저 구호도 외치고 노래도 선창해야 한댔다. 그것 역시 자신이 없었다. 먼저 참여했던 그 룸메가 부러웠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일정이 시작되는 그날부터 부러움은 질투로 변했다. 어긋난 질투는 어설픈 승부욕을 불러왔고 난 내가 엄두 안 나고 두려워했던 것을 무리해서라도 ‘1등으로’ 하고 싶었다. 

총 8박 9일인가.. 거의 10일 정도 되는 일정이었는데 첫날부터 밤이 되면 한 번도 겪지 못했던 극심한 우울감이 몰려왔다. 한 사무실에 50명가량이 책상과 의자를 한쪽으로 밀고 바닥에 은색 깔판만 깔고 자고 있는데 거기에 들어가면 숨이 막혀왔다. 6일쯤 되니 밤마다 누우면 눈물이 났다. 같이 간 룸메가 계속 옆에서 날 달래줬는데 그때도 난 그 애가 질투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내가 그간 감춰왔고 방치했던 모든 부정적 감정들이 이 9일 동안 다 폭발해버렸다.


8월 15일. 드디어 일정이 끝났다. 

다음날 난 바로 정신과에 전화를 했다.

심각한 우울증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안도했다. 내 아픔이 실체화되는 기분이었다. 

그때부터 2022년까지 거의 매일 밤 술을 마셨다. 정말 거짓말 안 하고 1년에 술을 안 먹는 날이 10일도 안될 정도로 매일 마셨다. 


나를 제일 힘들게 한 건 ‘인정’이었다.

남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었다. 사랑이라는 모호한 감정이 인정으로 구체화된다고 생각했다. 


지금에 와서는 다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처음엔 부모님을 원망했다. 

형편은 늘 안 좋았고 엄마는 예민했고 아빠는 방치했다. 엄마의 예민함을 맞추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내가 설거지를 잘하면? 운동을 잘하면? 공부는? 외모는? 가르치지 않아도 다 잘하면 엄마의 예민함도 누그러질 것 같았다. 실제로 엄마는 내가 무엇을 잘하거나, 화장을 하거나 하면 나를 아주 예쁘게 봐주었다. “요즘엔 너만 보며 산다”했다. 


내가 사회운동을 바라보기 시작하며 졸업을 미루고, 취업을 미루니 저 말은 ”요즘 너 때문에 죽고 싶다 “로 바뀌었다. 그 말로 나는 조금씩 죽어갔고, 그나마 버틴 건 술 덕분이었다.


중독에서 벗어나 보겠다고 빡센 알바를 구했다.

알바를 하며 30분 휴게시간에 밖으로 나가 참이슬 오리지널(보통 소주보다 도수가 높다.) 한 병을 사서 다 먹은 날, 내가 생각해도 내가 미친 것 같았다.


처음 운동을 접했을 때, 난 그 활동이 너무너무 좋았다. 사랑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회에서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 손 잡고, 약한 사람들과 연대하고, 그 사람들과 계란으로 바위를 칠 때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에 분노하고 슬퍼하며 함께 울 때도, 그래도 서로를 바라보며 술 한 잔씩 기울일 때도. 서글프고 좋았다. 우리만이 주고받을 수 있는 대화와 농담을 사랑했다. 


가끔 같이 활동하다가 직장을 잡게 되거나 다른 일을 하게 되는 사람은 "아직도 하냐, 쓸모없다, 한때 재밌었지, 빨리 너도 정신차려라" 라고 했고, 한창 우울증이 심할 때는 나도 그리 생각해보려 했다. 그런데 도무지 그렇게 되지가 않았다. 도무지. 어떻게 저렇게 생각하나 싶을 정도였다. 

내가 함께한 사람들과, 그들과 함께한 시간은 전혀 우습지도, 전혀 쓸모없지도 않았다. 

그것은.. 그것은 너무나 고귀했고 찬란했다. 세월호 유가족분들과 부퉁켜 안을 때, 해고 노동자들과 무더운 땡볕에서 같이 밥 먹을 때, 장애인들의 이동권 시위를 옆에서 응원할 때, 그때 느끼는 감정들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 중에 가장 높은 곳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 마음들을 별로 만들 수 있다면, 그 마음들을 무기로 만들 수 있다면, 그 마음들을 돈으로 만들 수 있다면. 아무튼 그 마음들로 뭔가를 만들 수 있다면 세상 무엇도 다 이길 수 있는 무적일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마음 자체로 무적인 것 같다.


아무튼 그래서 결심했다.

3년간 금주를 하기로. 무너진 나를 다시 무적으로 만들고 싶어서. 그래서 또 그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 


술을 마시다 필름이 끊긴 후 일어나 보니 바지와 속옷을 다 입은 채로 이불에 소변을 눈 적도 있었고, 한참 어린 후배가 경기도에서부터 정신 잃은 나를 부축해 온 적도 있었다. 술을 마시고 엎드려 자고 있는데 선배가 찾아와 내 주변에 어질러진 음식물들을 치워주기도 했고, 와인을 마시고 그냥 방바닥에 구토를 여러 번 해서 방바닥이 자줏빛으로 물든 적도 있었다.

수치스러운 기억은 쌓이니 지긋지긋해졌고 지긋지긋해지니 수치보다는 죽음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울은 자신이 없었다. 서울에선 얼마든지 술을 숨길 수 있었고 얼마든지 죽을 수 있었다. 

나는 부모님이 사는 내 고향, 김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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