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다시 무너질까 봐 무너졌던 하루

전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요

by 다은

요 며칠 몸이며 마음이며 컨디션이 좋지 않다. 가슴이 묵직하게 아픈 게 생리전증후군인가 싶다가도 생리전증후군이 이렇게나 오래 할 일인가 싶다. 사람들에게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나도 모르게 얼굴에 짜증이 묻어나는 것 같은 이 찝찝한 기분. 그들은 잘못이 없기에 나의 짜증 어린 표정으로 괜한 오해를 만들고 싶지 않다.

이런 나를 가장 먼저 알아챈 남편이 묻는다.

“무슨 일 있었어? 얼굴이 너무 안 좋아보여. 혹시 내가 뭐 잘못 했어?”

몹시 심각한 얼굴로, 그리고 차갑게(그럴려고 그런 게 아닌데) 내가 대답했다.

“아니. 전혀. 생리할 때 가까워져서 그런가봐.”

컨디션이 안 좋은 큰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그냥 매사 짜증이 쉽게 나고 지친다. 집안일을 할 때 놀아달라는 평소 같은 둘째의 조름이 성가시게 느껴지고, 그의 애원에 못 이겨 바닥에 마주 앉아 블록을 하는 잠깐의 시간이 무척 힘들게 느껴졌다. 내가 그렇게나 사랑하는 둘째인데. 난 왜 이러는 걸까. 하루에 10분도 제대로 놀아주지 않으면서. 아들에게 미안해 블록을 하면서도 하하하 억지로 웃어 보였다. 매일 하는 식사 준비도 너무 하기 싫어졌다. 아침에 고기를 부지런히 볶다가 주걱을 던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엄마가 정성 들여 해주신 반찬들을 냉장고에서 꺼내기만 하면 되는데 꺼내는 것조차 너무 귀찮아졌다.

갑자기 두려웠다. 내가 요새 운동을 소홀히 해서 그런가. 약을 많이 줄여서 그런가. 다시 마음이 가라앉아버리면 어쩌지.

요 근래 잠이 많아진 것도 걱정이 됐다. 회복의 개념이 아니라 전처럼 도피하고 싶은 마음에 그리 잠을 청하는 걸까.

집도 전보다 훨씬 어지럽다. 생각해보니 남편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때 옆에서 부지런히 치우고 정리하던 나의 모습을 본 지도 꽤 오래되었다.

그렇게 나는 나를 좋아졌을 때의 나의 모습과 비교하기 시작했다.

감정기복 –50점, 운동 –80점, 잠 –60점, 정리 –40점, 대인관계 –30점, 자녀돌봄 –50점, .... 짧은 시간에 많은 분야가 시험대에 올랐고 나의 예리하고 정 없는 분석 결과는 전부 마이너스였다. 싫었다. 더는 생각하기 싫어 침대에 누워 멍하니 핸드폰만 몇 시간 들여다봤다. 다음 날 아침, 피곤했기에 주말 기상이 더 빠른 아이들에겐 곤충 영상을 보여주고 다시 10시까지 늦잠을 잤다.

“엄마, 어제 엄마랑 약속했잖아. 아침에 놀이터 나가서 놀기로. 얼른 일어나서 나가자.”

이럴 때 둘째는 꼭 아빠 말고 나만 찾더라. 아빠도 지금쯤 안방에서 일어나서 핸드폰 보고 있을 텐데.(우리는 본의 아니게 각방을 쓴다) 어제 어린이집 끝나서도 내가 밖에서 같이 놀았는데, 또 이번에도 나라고? 아들과 다시 놀기로 약속한 것은 다름 아닌 나였지만, 지금 이 시각 그리고 조금 있다가도 침대에 누워 맘 편할 것 같은 남편(아무것도 모르는)에게 분노가 치밀었다. 사실 그 분노는 남편이 아니라, 쉴 수 없는 나에게 향한 것이었다.

“그래 나가자. 엄마가 얼른 밥 차릴게. 밥 먹고 나가자.”

앗 어제 치킨 시켜먹고 밥을 안 했지. 밥통에 밥이 없다. 화가 나지만 아이들 밥은 줘야하니 쌀을 씻고 앉혔다.

“엄마, 고기 구워줘.”

“그래.”

냉동실에서 대패 삼겹살을 꺼내 굽는다. 아들이 배고프다고 하니 하기 싫어도 그냥 했다.

“엄마 맛있어. 나 고기 조금 더 줘.”

잘 먹는 모습이 예뻐 내 몫을 덜어서 아들 그릇에 놓아준다. 늦은 아침을 양껏 먹고 배가 잔뜩 부른 아들의 보조개가 쏙 파인다. 늦게까지 자서 아이들 배를 곯게 한 게 미안하다.

“자, 다 먹었으면 양말도 신고 따뜻하게 잠바 입어.”

“응, 엄마. 오늘은 이걸로 땅 팔래.”

오늘 아침, 풍랑경보를 알리는 재난안전문자에 잠이 깼었다. 집 밖은 나무들의 정신없는 흔들림과 휭휭 소리만 감돌았다. 하지만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깟 바람쯤이야. 하고 추위를 헤치며 나갔다. 잘 파지지도 않는 놀이터 옆 화단의 흙을 긁으며 아들은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추워서 벌개진 볼에 또 깊이 보조개가 파였다. 그런 아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돌았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의 주제를 아들이 아닌 ‘나’로 바꾸고, 생각하고 생각하다 이런 결론을 내렸다. 내가 잘 지내고 있는지 중간 중간 살피는, 나에 대한 검열이 더 나를 복잡하고 아프게 만드는 것 같다고. 그리고 그냥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컨디션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지. 생리 시작하면 곧 기분도 몸도 괜찮아질 거라고. 몸과 마음의 기분을 안 좋게 만드는 호르몬에게 잠시 지배는 받지만 그런 나를 미워해버리고야 마는 호르몬의 노예는 되지 말자고. 그리고 아들과 놀아주기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그냥 누워버리자고. 또 음식은 여전히 하기 싫으니 동네 반찬가게 밴드를 검색해서 가입을 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진심을 다 하고 싶은 존재와 그와 관련한 어떤 일이 있다면 순간은 하기 싫더라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하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게 결국엔 루틴이 되어 나를 다시 웃게 할거라고 믿기로 했다.



사랑해. 아들.

작가의 이전글27.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에게 쓰는 편지(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