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그 해 5월, 나는 살고 싶었다

전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요

by 다은

이 이야기를 글로 적을까 말까 수십 번 고민했다. 사람들은 ‘내’가 누군지 잘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는 존재만으로 나에게 치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와 나를 진심으로 위하는 가족의 절실함이 담긴 것이기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힘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글을 시작한다.

그 날은 태어나서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함께 살았던, 손주 중에서도 가장 나를 많이 사랑해주시던 외할아버지를 하늘로 보내드린 날이었다. 코로나가 제일 유행하던 때 요양병원에 계셔 면회도 제대로 못 가봤고, 한창 힘들던 나의 35살 생일에 돌아가셔서 할아버지가 나에게 뭔가 말씀하시고 싶은 게 아닌가 생각되어 입관하던 그 날 울기도 많이 울었다.

장례가 끝나고 가족들의 상의하에 할아버지를 위한 진혼굿을 해드리기로 했다. 어린 시절 내가 할아버지와 정답게 살던 집에 온 가족과 무속인이 모였다. 썰렁하던 할아버지 댁이 음식과 사람들, 원색의 물결로 넘쳐났다. 나는 할아버지가 좋은 곳에 편안히 가시기를 열심히 기도하는 중이었다. 한 무속인이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널 보니 너무 힘들어. 뭐가 그렇게 힘들어. 너 할아버지 손녀야? 너 그렇게 참다가 큰일나.”

속으로 깜짝 놀랐다. 그 때는 내가 상담을 받은 지 한 달 정도 되어갈 때였다.(병원에 가기 전, 우울증 진단을 받기 전이다.) 그 쯤, 가족들은 날 볼 때마다 눈이 썩은 고등어 눈 같다고 말하긴 했었는데 처음 본 사람이 내 힘든 상태를 알아본다는 사실에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할아버지를 보내드린 날이어서 가족들 모두 무속인에겐 똑같이 힘들어 보였을 텐데. 그녀는 유독 나에게만 핏대 세워 이야기했다.

“손을 써야 할 정도야. 계속 저렇게 지내서는 절대 안 돼. 얘 엄마 누구야?”

아무 잘못 없는 우리 엄마가 걱정 어린 얼굴로 “전데요.” 라고 손을 들었다.

“엄마, 똑똑히 들어. 딸 살려야 해. 내가 아무나 잡고 이런 말 하는 거 아니야. 나중에 할아버지 진혼굿 끝나고 연락을 해. 딸 이대로 놔두면 진짜 큰일 나.”

안 그래도 거멓게 변한 엄마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 나는 더 이상 무속인에게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아 굿이 벌어지고 있는 그 시각, 다른 가족들을 남겨둔 채 먼저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와버렸다. 그날 밤, 듣기 싫은 무속인의 말이었지만 그녀의 말이 진짜가 되어버리면 어쩌지. 라는 생각에 잠들기가 어려웠다.

일주일이 지나고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다은아, 너 이러다 큰일 나. 무당도 너가 힘든 걸 맞추잖아. 우리 뭐라도 도움이 되는 것 다 해보자. 응?”

“엄마! 나 괜찮아! 이제 상담 받고 있다고! 무당은 다 돈 벌려고 그러는 거 엄마도 알잖아!”

“엄마도 알아. 하지만 엄마는 네가 너무 걱정돼. 비용은 엄마가 다 댈 테니 엄마가 하자는 대로 한 번만 해보자. 응?”

“......”

당시 마음이 많이 힘들어 약해지기도 했고, 엄마의 간곡한 애원을 거절하기도 어려웠고, 무엇보다 내가 직접 들은 무속인의 말이 사실이 되면 어쩔까 하는 두려움에 나는 엄마의 제안을 조심스레 받아들였다.

그 날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약 한 달이 안 되었을, 5월 5일 어린이날이었다. 아침 일찍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남편에겐 이에 대해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엄마와 나는 신당으로 갔다. 그 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세히 쓰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나는 그 곳에서 내가 나아질 수 있기를 기도했고, 또 기도했다. 왜 이렇게 힘든 건지, 내가 나아질 방법은 없는 건지, 남편하고 내가 끝까지 살 수 있을지. 할아버지, 제발 도와달라고. 엉엉 목놓아 울었다.

번듯한 직장에 석사까지 딴 내가, 아이도 둘이나 있는 내가, 이런 이유로 신당을 찾아오리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난 그 순간 진심으로 살고 싶었고, 끈적한 늪 같이 날 잡아당기는 힘듦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우리 가족도 나와 같은 마음일 뿐이었다. 가족들에게 이제까지도 매일 우는 모습만 보여줘 미안했는데 이 일을 계기로 더 죄책감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했으니 난 꼭 나아야만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이겨내리라 마음 먹었다. 더 이상 약하게 눈물 흘리지 않겠다고 다짐 또 다짐했다. 우리 엄마를 봐서라도 살아야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글을 쓰는 도중에 안 좋았던 기억이 떠올라 가끔씩 멈칫거렸다. 하지만 꼭 끝까지 글을 완성하고 싶었다. 내가 결국 나아졌다고, 이겨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날의 선택을 정답이라고도, 실수라고도 부르지 않는다. 다만 그만큼 절박했고, 그만큼 살고 싶었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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