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다시 육아를 시작했습니다

전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요

by 다은

“언니...... 나 어떡해?”

한창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평소 고민을 털어놓는 쪽은 나였기에 동생의 이런 전화는 적잖게 놀랐습니다.

“언니, 나 임신이래.”

“와! 진짜? 축하해. 바라던 대로 잘 됐네! 근데 뭐가 어떡해?”

“언니, 쌍둥이래...... 나 애기 셋을 키울 수 있을까? 휴직을 오래 하면 승진에서도 밀릴 텐데. 벌써부터 너무 걱정 돼.”

동생이 털어놓은 고민에 조금 놀랐지만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부정적인 말들로 동생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잘 키울 수 있을 거야. 내가 많이 도와줄게. 내년에 휴직하니까 매일 가서 도와줄게. 우리 집(엄마 집, 엄마와 나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산다) 근처로 이사 와.”

그 후로도 울먹거리는 동생의 전화를 여러 번 받았습니다. 쌍둥이 임신과 출산, 바쁜 직장생활, 풍족하지 않은 경제 상황 등 많은 것들이 동생을 힘들게 했나 봅니다. 이젠 내가 도와줄 차례였습니다. 내가 힘들 때마다 동생에게 마음을 털어놓고 위로를 받았던 것처럼요.

3월 말, 동생은 딸 쌍둥이를 건강하게 출산했습니다. 다섯 살 첫째 딸까지 세 딸의 엄마가 된 것입니다. 조리원 생활이 끝나고 처음 만난 쌍둥이는 빨간 고구마처럼 작고 예뻤습니다. 반면, 동생은 많이 지쳐있었습니다. 몇 년 전 출산 했던 나의 모습이 겹쳐 보여 짠했습니다.

그렇게 나의 신생아 육아는 5년 만에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평일 아침, 초등학교 1학년인 첫째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우리 집 옆으로 이사 온 동생 집으로 출근했습니다. 출근하고 먼저 동생의 상태를 살폈습니다. 전날 밤 쌍둥이들이 많이 깨서 보챘는지에 따라 동생의 얼굴빛은 조금씩 달랐습니다. 기본적으로 거먼 얼굴을 장착하고, 잠을 많이 못 잔 날에는 얼굴이 더 거매져 흙빛이었습니다. 첫째 때 잠을 못 자 비실거리던 나의 모습이 겹쳐 아른거렸습니다. 동생도 출산을 하고 나처럼 힘들어질까봐 걱정이 됐습니다.

동생에게 잠 좀 자라고 하고 아기를 받아 둥개둥개 우유를 먹이고 자장자장 재웠습니다. 아기들은 너무 작고 소중했습니다. 그런 아기들이 울 때는 마치 처음 아이를 돌보는 것처럼 안절부절했습니다. 졸린 건지, 배가 고픈 건지, 기저귀가 젖은 건지 쌍둥이들은 여느 신생아처럼 계속 응앙응앙 울었습니다. 선잠에서 깬 아기가 울음을 그치지 않을 때, 몇 시간이고 아기를 안고도 아무것도 해줄 수 없던 첫 아이 신생아 때의 내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쌍둥이 육아는 생각보다 더 어려웠습니다. 먹이는 시간, 재우는 시간이 비슷했기에 성인 혼자서 아기 둘을 돌보기가 힘들었습니다. 휴직 전, 집 대청소 해야지. 낮잠 늘어지게 자야지. 일주일에 한 번은 멋진 카페에 가서 책을 읽어야지. 등의 계획을 세웠던 나는 이 계획을 실행할 수 없었습니다. 돌아가며 우는 쌍둥이, 얼굴이 거먼 동생, 어디 가지 못하고 하루 종일 함께 하는 엄마까지. 좋자고 나만 그 곳에서 나올 수 없었습니다. 우리 셋은 돌아가며 육아를 하기로 했습니다. 나와 동생이 집에 있으면, 엄마가 1시간 운동을 하고 오고, 나와 엄마가 집에 있으면 동생이 1시간 운동을 하고, 내가 볼 일이 있는 날에는 동생과 엄마가 쌍둥이들을 돌봤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육아를 했습니다.

주말엔 동생의 큰 딸, 우리 딸 아들 이렇게 셋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동생 부부가 쌍둥이 동생들을 돌보느라 큰 애한테 신경을 못 쓰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이 셋 엄마처럼 봄과 가을엔 산과 들, 여름엔 바다와 수영장, 겨울엔 키즈카페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가끔은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 셋을 데리고 다니느라 방전되기도 했지만 함께 하면 더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며 다시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쌍둥이들은 이제 10개월이 되었고 3월이면 어린이집에 갑니다. 매일 아침 동생네 집으로 출근하던 저도 직장으로 돌아가겠죠. 지금도 살집이 통통한 쌍둥이들을 안으면서 이 순간이 좀 더 지속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쌍둥이들이 엄마인 동생보다 나를 더 찾는 걸 볼 때 마음이 시큰거려 아기들이 많이 생각날 것 같습니다. 주말에는 공동육아를 할 생각입니다. 우리 아이 둘, 동생 아이 셋 이렇게요. 상상만으로도 재미있습니다.

쌍둥이에게, 동생에게 고맙습니다. 내가 다시 육아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매일 루틴으로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면 병휴직한 내가 잘 살아낼 수 있었을까 하구요. 다시 시작한 육아는 누군가를 돕는 일이었지만, 결국엔 내가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준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마음이 힘든 날에도 귀여운 아기를 안으며 냄새를 맡고 찐득한 손을 만지고 볼을 부비고. 까르르 웃는 아기들에게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학창시절 많이 싸웠던 우리였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서로의 힘듦을 함께 나누고 같이 나이 먹어갈 수 있는 것이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고맙습니다. 나와 동생을 키워준 것도 모자라 나의 아이들, 동생의 아이들도 자신을 희생해가며 돌봐주신 엄마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엄마 덕분에 앞으로도 거친 세상이 와도 버틸 수 있을 힘이 점점 더 생기고 있습니다. ‘엄마가 나를 이렇게 열심히 키웠는데 그런 내가 이 것쯤 못 하겠어?’ 하고요. 엄마는 엄마, 나, 여동생 이렇게 3명이 함께 모여있을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며 아쉬워합니다. 초등학생 때는 뭘 몰랐고, 중 고등학생 때는 학교, 학원 다니느라 집에 별로 없었고, 대학생 때는 육지에 있었고, 직장인이 되어서는 휴가가 생기면 친구들이랑 여행 가기 바빴습니다. 결혼하고 남편 밥은 차려줬지만 아빠. 엄마를 위해 생신상 한 번 제대로 차려준 적이 없었습니다. 딸들과 이렇게라도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 좋다는 엄마에게 내일은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생식빵을 사서 가야겠습니다. 엄마의 노고를 잊지 않겠습니다.

다시 육아를 시작했던 2025년이 저물고 2026년이 되었습니다. 아기 목욕시키고 재우느라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지만 동생을 도와주고 엄마와 함께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이 순간, 나의 휴직 생활은 내 인생에 한 페이지가 되어 나를 다시 일으켜 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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