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네가 나에게 오던(다시 오던) 날

전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요

by 다은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임신을 했다. 기뻤지만 얼떨떨했다. 당시 우리는 아기를 가질 생각도, 준비도 되지 않았었다. 다만 3여년간 생리불순이 심해 산부인과를 다녔던 지라 피임은 따로 하지 않았다. 산부인과에서 심장 소리를 들을 때까지도 뱃속에 아이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 뒤 원인 모를 미식거림, 입덧이 시작되며 내 안에 또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걸 실감했다. 경이로웠다.

매일 저녁 먹고 샤워를 한 뒤 화장대 거울 앞에서 배 셀카를 찍었다. 아이가 잘 크고 있는지 매일, 매 순간 궁금했다. 내 배인지, 아기 배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홀쭉했던 배가 겨울이 될 쯤 살이 트고 터질 것처럼 빵빵해졌다. 살이 많이 쪘지만, 그래도 좋았다. 딸일지, 아들일지. 얼굴은 누구를 더 닮았을지. 출산예정일 보다 일찍 나올지, 늦게 나올지. 아이는 나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속을 도통 모르겠는, 가장 궁금한 존재였다.

아기 엄마가 되는 것이 기쁘기도 했지만 남편이 이직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마음은 마냥 편하지 않았다. 아기를 낳으면 휴직을 해야 하는데 남편이 이직이 잘 안되어 수입이 없어지면 어떡하지. 아기가 태어나서도 남편과 자주 다투면 어떡하지. 이런 고민의 두께는 점점 깊어졌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남과 비교하던 습관이 생긴 게. 공부하러 간 남편이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을 때 난 혼자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침대에 누워 눈물을 훔쳤다. 그러고 다시 툭툭 털고 잘 지냈으면 됐을 텐데. 나는 남편에게 자꾸 화를 냈고 우리는 점점 많이 싸웠다.

잘잘한 눈발이 흩날리던 날, 퉁퉁한 드럼통 같던 나는 아이 범퍼침대를 머리에 이고 친정집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신혼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하면서. 현관에서 마주한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끅끅 울었다. 그 날은 엄마도, 나도, 뱃속에 있는 아이도 많이 울었다. 엄마로서 나쁜 일을 하는 것 같아 아이에게 많이 미안했다. 친정아빠의 얼굴은 면목이 없어 차마 볼 수 없었다.

가장 좋아하는 목련이 일주일도 피지 못하고 다 떨어지던, 출산예정일을 2일 앞둔 날, 양수가 새는 것 같아 병원에 갔다. 예감이 맞았다. 양수가 새고 있으니 바로 입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몇 달 못 본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출산가방 싼 거 들고 병원으로 와줄 수 있어? 아이 이제 나온대.” 엄마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 게 너무 미안했다. 앞으로도, 미안한 일만 있을 것 같아 더 미안했다.


이제 곧 나올 줄 알았던 아이는 입원한 지 3일이 지났는데도, 촉진제를 계속 맞는데도 나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2시간에 한 번씩 하는 내진도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남편 없이 한다는 사실에, 내가 자초한 일이었지만, 불행했고 속이 상했다. 남편 대신 옆에 있어 주는 엄마의 얼굴도 점점 어두워졌다.

양수가 부족해 2시간 안에 아이가 나올 기미가 없으면 수술하기로 결정하고 새우등처럼 몸을 구부려 마취를 했다. 그 순간에도 나는 울었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자연분만을 못하게 될까봐 우는 줄 알았을 거다. 나도 그 땐 그런 줄 알았다. 근데 남편이 보고 싶었다.

뱃속 아이가 의사 선생님이 하는 말을 들었는지 그 2시간이 끝나기 전, 기차가 내 배를 지나가는 것 같은 고통(진짜 이런 느낌이다)을 주고, 드디어 나에게 찾아와주었다. 분만실에서 총 3번 힘을 주었는데 2번 힘을 주고는 기절을 했다. 기절하고 정신을 차려 보니 낯선 남자 1명과 여자 2명(의사, 간호사)이 “마지막이에요. 다 됐어요! 힘주세요!”라는 게 아닌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응원을 들으며 나는 마지막으로 힘을 빡! 주고 그렇게 딸을 품에 안았다. 얼굴에 미처 닦지 못한, 피가 묻어있는 작고 작은 내 미니미는 으앙으앙 멈추지 않고 울었다.


드디어 네가 나에게 왔구나! 건강하게 와줘서 고마워! 엄마가 앞으로도 너를 잘 돌봐줄게.



“아이 아빠, 이제 탯줄 자르러 들어와 주세요.”

“아, 선생님. 아이 아빠 없어요. 선생님이 잘라주세요.”

“...?”

아이를 낳아서 헛것이 보이는지, 초록색 수술복을 입은 남편 같은 사람이 분만실로 들어오는 게 아닌가. 엄마가 남편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그렇게 우리 세 가족은 두 달 만에 분만실에서 재회를 했다. 남편은 탯줄을 자르고 날 보며 뻔뻔하게 웃고 있었다. 순간 얄미워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배, 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 품에 있는 딸에게 집중하고 싶었다.

“고생했어.”

“......”

남편의 말에 대답하고 싶지 않았지만, 5초 뒤 나도 모르게 투정을 부렸다.

“진짜 많이 아팠어.”


남편은 방금 도서관 갔다 집에 온 것처럼 날 보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 날을 나는 오래 ‘아이를 낳은 날’로만 기억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날은 아이가 오던 날과 동시에, 그가 내게 다시 오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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