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복귀

전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요

by 다은

작년 11월,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수업지원교사 제의였다. 늘 주 20시간 이상 수업을 하던 나에게 주 8시간의 전담수업과 예술, 안전, 생활 업무를 맡아달라 했다. 휴직 전 6학년 대표를 하며 학생과 학부모에게 꽤 시달렸던 나는 그 제안이 달콤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성급한 결정은 하고 싶지 않아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인맥을 총 동원해 동료선생님들에게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오랜만이에요. 여쭤볼 게 있는데요. 혹시 수업지원교사 해보시니 어때요?” 선생님들은 오랜만에 전화를 걸었는데도 반겨주시며 정성이 담긴 조언을 가득 해주셨다. 하지만 반갑고 고마운 통화를 나누었는데도 마음은 더 혼란스러웠다. 그들의 조언의 방향이 절반으로 딱 나누어졌기 때문이다. “하면 좋다. vs. 굳이 할 필요 없다.”

남편, 엄마, 여동생에게도 이야기 해보았지만 그들은 교직생활을 잘 모르니 그저 묵묵히 들어줄 뿐이었다. 선택은 결국 내 몫이었다. 2일 정도 고민을 하다 전처럼 담임을 하겠다고 학교에 말했다. 13년간 전담교사를 해 본 적도, 교무실 근무를 해본 적이 없기에 이미 알고 있는, 내가 하던 담임을 그대로 하는 게 리스크가 적다는 결론이었다.

교감은 내 말을 듣더니 약간의 한숨을 쉬었다. 학교 내에 수업지원교사를 희망하는 사람이 없는 듯했다. 그래서 나한테까지 전화가 왔겠구나 싶었다. 학교의 사정도 안 됐지만 내가 학교 사정까지 고려할 상황은 아니라고 내 자신에게 주문을 걸며 다시 한번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도 병휴직 후 복귀하는 거라 자신이 없습니다. 하던 대로 담임을 하는 게 저나 학교를 위해 좋을 듯 합니다.”

“선생님, 걱정되는 거 잘 알아요. 내가 옆에서 많이 도와줄테니 같이 해보는 게 어때요? 재작년 학부모에게 스트레스 많이 받았다고 들었어요. 업무부장은 학생과 학부모와의 접촉이 거의 없으니 오히려 선생님이 복귀하는 데 부담이 덜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제안하는 거예요.”

교감은 학교에서 제일 바쁘기에 나 같은 막내 부장은 신경 써주지 못할 거다. 그리고 군말 없이 맡은 일을 어떻게든 끝까지 해내는 사람을 찾고 있는 걸 알고 있었다. 내가 수업지원교사를 맡았을 때 펼쳐질 상황은 어느정도 머릿속에 그려졌지만, 교감의 마지막 말에 나는 또 흔들렸다.

3월마다 성대결절로 이비인후과를 들락거릴 일도 없을 거고, 여학생들의 미묘한 심리전과 따돌림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매일 하던 상담도 거의 안 할 거고, 무엇보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던 교실 전화와 하이톡 메시지를 안 받는 건 큰 메리트였다.

그래. 한 번 해보자.

“교감 선생님, 한 번 해보겠습니다. 대신 올해 해보고 제가 아니라고 하면 더 이상 시키지 마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처음 업무부장을 맡는다는 걸 고려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주 화요일부터 학교에 나갔다. 전날 밤, 학교에 처음 출근하는 신규교사처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교육과정 수립주간 첫 시간, 업무분장 및 자기소개를 하던 나의 입이 덜덜 떨렸다. 저경력 교사들도 차분히 잘 이야기하는데 처음부터 덜덜 떠는 업무부장이라니. 창피했다.

오랜만에 나이스(교사업무포털)를 로그인했다. 아직 내 업무가 뭔지도 잘 모르는 나에게 공문이 몇 십개가 분류되어 있었다. 아 이제 시작이구나 싶었다. 띠리리리~ 전화가 울렸다.

“안녕하세요. **초 교무실입니다. 아, 방과후 수강신청이요. 담당자 연결해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초 교무실입니다. 통학버스는 제 담당이긴 한데요. 제가 내용 다시 확인하고 전화드려도 될까요?”

“안녕하세요 **초 교무실입니다. 동아리 강사 채용은 2월 말에 공고 예정입니다.”

“안녕하세요 **초 교무실입니다. 2026 교과서가 아직 배송이 다 안되어, 배송이 완료되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교실과는 다른 업무현장이었다. 컴퓨터를 할라 하면 민원전화가 왔다. 막내 부장이니 내가 받아서 일단 처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내용을 잘 모르니 시원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어제까지 쌍둥이 아기를 돌보던 나의 머리는 아직 뭔가가 채워진 상태가 아니었다. 잘 하고 싶은데 잘할 수 없었다.

전날 밤 애들을 재우고 당장 해야 할 것들만 스르륵 파악하고 학교에서는 조금씩, 겨우 처리해나갔다. “부장님~ ”으로 시작하는 메시지들이 계속해서 쏟아졌다. 부담스러웠다. 퇴근 할 때 쯤 몸이 부서질 듯 아팠다. 긴장을 많이 했던 탓이었다.

“엄마~ 왜 오늘은 어린이집 차 안 타고 엄마가 데리러 왔어?”

정시 퇴근을 하지 못하고 여섯시가 다 되어 아들을 데리러 어린이집에 갔다. 어린이집 신발장에 아들을 포함해 3개의 작은 신발들이 덩그라니 남아있는 걸 보고 마음이 아팠다.

“도경아, 엄마가 이제부터는 좀 바빠질거야. 도경이도 많이 컸으니 이해해주었으면 해. 대신 엄마가 쉬는 날 더 많이 놀아줄게.”

“응 엄마. ^______________^”

아들의 환한 미소가 나를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제 다시 시작이구나. 앞이 깜깜하지만 그냥 되는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극한으로 몰아붙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이 돼지우리가 되어도 잠부터 잘 것이며, 주말에 학교를 가더라도 일주일에 글 하나는 쓰리라. 그리고 잠깐씩이라도 운동을 하리라. 다짐했다.


“너무 잘 하려고 애쓰지마.”

어제, 퇴임을 앞둔 2025 교장의 말이었다.

“부장님~ 이미 잘 하고 있으니 너무 잘 하려고 하지 않아도 돼.”

같은 날, 나를 잘 아는 선배교사의 메시지였다.

남들에게는 내가 이렇게 보였나보다. 난 마음을 좀 비워야 할 것 같다.

남들 생각하지 말고 나랑 내 가족만 우선 생각해야겠다. 너무 잘 하려다 또 힘들어질 수 있으니.

보통만 해도 대성공이다.

처음이니 실수해도 봐줄 거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자.

나에게 일을 떠넘기려는 사람이 있거든 정색하며 말하자. “제 업무 아닌데요.”

내가 다 할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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