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요
서울에 있는 남동생에게서 카톡이 왔다. 먼저 가족 채팅방에 글을 올리지 않던 그가 톡을 보낸 것 만으로도 가족들의 이목을 끌만 했다.
나 성산에 있는 **콘도 당첨됐어. 우리 가족 같이 1박 하고 오자.
회사 명의의 숙소의 숙박권을 추첨을 통해 매달 직원들에게 제공하는데, 그 추첨에 남동생이 응모했고 몇 번의 탈락 끝에 당첨이 된 모양이다.
날짜는 1월 31일이야. 부모님 결혼기념일.
한동안 잊고 있었던 날이었다. 부모님이 결혼하던, 1987년 1월의 마지막 날.
와 잘 됐네. 안 그래도 올 겨울에 같이 어디라도 가고 싶었는데.
쌍둥이 아기를 키우며 외출을 거의 못하던 여동생이 제일 기뻐하는 것 같았다.
카톡의 1은 4였다가 곧 없어졌지만 부모님의 답장은 따로 없었다.
“아빠! 돌아오는 1월 31일에 시간 돼? 재혁이 회사 숙소에서 하루 묵고 오자!”
평소 가족 모임을 주도하는 내가 참지 못하고 아빠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응 시간 된다.”
늘 단답형의 말로 대답하는 아빠였지만, 목소리에는 좋은 느낌이 담겨있었다.
“엄마! 엄마도 1월 31일 시간 되지? 엄마아빠 결혼기념일 기념으로 다녀오자! 약속 잡지 말고!”
엄마도 자주 못 보는 막내 아들을 곧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했다.
제주시에서 차로 1시간 넘게 걸리는 성산을 가는 것은 우리 가족에겐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다. (제주에 살다보면 차로 30분 거리도 멀게 느껴지곤 한다.) 큰 맘 먹고 오랜만에 간 성산은 우리에게 따뜻하고 바람 없는 날씨도 함께 선물해 주었다.
숙소는 150평의 2층으로 된 깔끔하고 럭셔리한 별장이었다. 부모님과 우리 삼남매, 사위 둘에 아이들 다섯, 총 12명의 가족이 생활하기에 넉넉하고 쾌적했다.
“야~ 재혁아 대박인데? 여기 엄청 비쌀 거 같아. 여기 돈 다주고 오려면 겁나겠다야.”
모처럼 만의 외출에 신이 난 아이 셋 엄마(여동생)는 덩실덩실 춤을 추며 숙소를 둘러보았다. 나도 그런 여동생의 모습이 좋아 조카들을 안고 흐느적흐느적 껄껄거리며 함께 춤을 췄다.
엄마는 숙소에 오자마자 이고지고 온 짐을 풀어 요리를 시작했다. 가족끼리 숙소를 잡고 놀러 올 때도 엄마는 요리를 한다. 나 같으면 다 시켜먹자고 할 것 같은데 며칠 동안 우리가 먹을 메뉴를 고심하며 하나하나 차곡차곡 준비를 해놓는다.
“엄마~ 바로 요리 하지말고 앉아서 저기 바다보면서 쉬어. 여기 캡슐도 있어. 커피 마시자.”
엄마는 잠깐 앉았다 다시 요리하러 일어났다. 오늘은 엄마의 날인데. 오늘은 요리 안해도 좋을텐데. 괜히 고생만 시키는 것 같아 미안했다.
언니~ 그건 사 왔어?
옆에 있는 동생이 나한테 카톡을 보냈다. 우리의 깜짝 이벤트를 준비하기 위한 사전단계이다.
응, 사 왔어. 화장실 간다고 하고 2층으로 올라와. 나 먼저 올라가서 짐정리 하는 척 할게.
다*소에서 산 파티용품을 살며시 꺼내 한쪽 벽을 꾸몄다. 넓은 벽에 조그맣게 붙인 풍선과 가랜드가 전부였지만 나름 귀여웠다. 2주 전부터 준비했던 레터링 케이크, 아빠가 나에게 미리 부탁해 놓았던 꽃다발도 탁자에 꺼내 놓았다.
“빨리 편지 써. 그리고 아빠만 슬쩍 올라오라고 해.”
파티용품 고르다가 같이 고른 천원짜리 카드도 딱 4장이었다. 엄마를 위해 아빠, 삼남매가 짧지만 진심이 담긴 마음을 글로 옮겼다. 그리곤 다시 1층으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광어회, 족발, 떡국을 술과 함께 곁들인 맛있고 즐거운 1차 식사를 끝내고 우리의 본격적인 계획이 실행되었다.
“아빠, 엄마. 우리 2차는 2층에서 간단히 먹자. 미리 준비해 뒀어.”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와 그걸 보며 신나 하는 우리는 애써 표정을 감추며 2층으로 올라갔다.
“결혼 축하합니다. 결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아빠엄마의 결혼기념일을 축하합니다.”
딸 둘, 아들 하나, 사위 두 명, 9살, 6살, 2살 손주들의 축하를 받으며 부모님은 케이크에 촛불을 불었다. 머리에 고깔을 쓰고 꽃다발을 안은, 영문을 모르는 엄마는 여전히 어안이 벙벙했다. 우리의 깜짝 이벤트는 대성공이었다.
이제 마지막, 하이라이트만이 남았다. 지금으로부터 39년 전, 눈이 펑펑 오던 아빠 엄마의 결혼식 영상(약 50분가량)을 티비로 틀었다. 예전 집에 있던 결혼식 비디오테이프를 남동생이 파일로 변환해 가지고 왔던 것이다.
“무슨 영상이 이렇게 길어? 우와~~~~~~~”
영상 속 부모님의 결혼식은 지금의 결혼식과는 달랐다. 신랑(아빠)이 신랑집에서 차를 타고 출발해 신부(엄마) 집으로 가서 신부를 데리고 결혼식장에 가고, 결혼식이 끝나 다시 신부집으로 가서 돼지를 잡고 잔치를 하는 모습.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의 젊은 시절 모습, 내 나이보다도 훨씬 어린 큰아빠, 이모의 모습이 세월의 흐름을 짐작하게 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앳되고 마른, 꽃미남 신랑이 볼살이 통통하고 발그레한, 수줍은 신부의 긴 드레스 자락을 잡고 폭 안으며 걸어가는 모습이었다.
“엄마 너무 예쁘다. 채은이(쌍둥이 막내)랑 똑같아.”
뽀얗고 귀여운 엄마의 모습을 보고 왜 난 눈물이 났을까. 눈물버튼이 꾸욱 눌러졌다.
“누나, 엄마도 안 우는데 누나가 왜 울어? 크크크. 미형아. 너네 엄마 운다. 흐흐흐”
“몰라. 엉엉. 엄마가 많이 늙었어. 힝 엄마...”
앳되고 고운 엄마가 지난 세월 고생 했을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그 때 엄마는 고생을 잘 모르는 예쁘고 작은 소녀였다. 아빠도 마찬가지다. 잘생긴 얼굴은 그대로지만 주름도 많이 생기고 머리카락도 많이 빠졌다. 아빠 엄마는 지난 세월 동안 우리를 어떻게 키워냈을까. 아빠는 매일 밤 늦게까지 직장에서, 엄마는 우리 삼남매 밥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학교 보내며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9살 딸을 키우는 아빠 엄마의 39살 난 큰딸이 지난 시간을 떠올리며 줄줄 눈물을 흘렸다.
아빠, 엄마의 표정을 보니 그들도 지난 세월이 머릿속에 차르르 흘러가는 듯 보였다. 나처럼 눈물을 흘리진 않지만 그들의 눈동자에는 여러 감정이 뒤엉켜 있었다.
“엄마, 근데 우리 언제 케이크 먹어?”
6살 아들과 조카는 초코케이크를 언제 먹는지가 제일 중요했다. 그 모습이 순수해 우리 가족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다은아. 얼른 그릇하고 포크 가져오라.”
손주들에게 맛있는 걸 빨리 먹이고 싶은 엄마가 말했다.
“응 엄마. 가져올게. 엄마, 아빠. 39주년 결혼기념일을 진심으로 축하해요.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우리 가족을 이렇게 멋지게 일구어 주셔서 고마워요. 앞으로도 건강하게 오래 함께 살아요.”
쑥스럽지만 엄마의 말에 대답하며 나의 마음을 보냈다.
나도 이렇게 멋진 가정을 꾸리리라. 다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