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요
학창 시절에는 깔끔하고 부지런한 엄마 덕분에 집은 늘 단정했고, 저는 그런 환경이 당연한 것처럼 혜택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런 저에게 20살 대학생이 되며 처음으로 집을 떠나 학교 기숙사에서 살게 되었을 때, ‘정리를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이 시작되었죠. 처음엔 저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시도도 많이 해봤습니다. 서랍에 무엇을 어떻게 놓을지, 책은 어떤 순서로 꽂아야 할지, 책상은 며칠에 한 번 닦아야 할지 등등. 생각보다 정리는 성격 급하고 게으른 저에게 많이 어려운 영역이더군요. 기숙사의 저의 책상과 침대는 깨끗함이 삼일 이상 유지되지 못했던 거 같아요. 룸메이트, 옆방 다른 친구들의 깔끔하고 아늑한 공간을 보며 알게 모르게 저 자신의 공간과 비교도 많이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정리를 잘하고 싶지만 잘 못 하는 사람, 꾸밈 감각이 없는 사람’으로 20대를 보냈네요.
30살에 결혼을 한 저에게 첫 집이었던 신혼집은 거실이 조그맣게 있는 투룸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신혼의 단꿈을 꾸며 가전과 가구를 고심하며 갖춰놓고 잘 못 하지만 정리도 나름 열심히 했어요. 식탁 대용으로 쓰던 상을 예쁘게 꾸미고 싶어 상보와 휴지케이스를 사러 며칠 동안 발품을 팔았던 기억이 나네요. 우리의 공간을 잘 가꾸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던 그때였습니다. 그런 예쁜 마음 덕분이었는지 저에게 곧 첫째 딸이 선물처럼 찾아왔습니다.
첫째 출산 후 모든 관심과 신경이 태어난 아기에게 쏠렸기 때문일까요. 아무렇게나 바닥에 벗어 놓은 옷을 다음날 다시 그대로 입기 일쑤였고, 설거지는 꾸준히 쌓여갔습니다. 밤에 자다 두 세 시간에 한 번씩 모유를 찾으며 우는 딸 아이를 달래는 날들이 8개월 이상 지속되었고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다이어트였던 제가 살이 10킬로그램 이상 빠졌습니다. 아이의 장난감과 그림책, 어제 신다 벗어 놓은 양말, 먹다 남은 우유병과 냄새나는 기저귀. 이런 것들이 규칙 없이 널브러져 있는 나의 공간을 보며 나는 한숨을 푹푹 쉬었습니다. 뭐라도 치워야 할 상황이었지만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일이 끝나고 오후 4시쯤 우리 집에 들러주는 친정엄마만 기다릴 뿐이었어요.
가끔 유튜브에 청소전문업체가 쓰레기 집을 청소해주는 영상이 뜰 때가 있습니다. 청소 과정이 나오는 중간중간 청소업체 사장님의 인터뷰 영상이 나오는데 “이 집 주인분이 굉장히 힘드신 상태였어요.”란 말씀을 자주 하시더군요. 이제 와 지난날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던 우리 집은 당시 힘들었던, 살기 위해 버티던 제 마음의 모양과도 같다는 생각에 마음 한편이 저릿합니다.
그렇게 저는 저의 첫 집이었던 1년간의 투룸 신혼집 생활, 두 아이를 낳고 기르며 5년 동안 어지럽고 정신없이 살던 전세 아파트를 뒤로 하고 현재는 진짜 내 집을 마련해 이 안에서 나만의 정리를 하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습니다. 여전히 급하고 게으른 제 성격과 8살, 5살 남매의 저지레 덕분에 집은 여전히 깨끗함이 삼일 이상 가지 않지만, 정리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방금 밥 먹은 식탁을 닦으려는 나의 모습에 나는 셀프 찬사를 보냅니다. 며칠간 쌓인 축축한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동작 버튼을 누르는 나에게 세탁기마저 “띠리링” 응원해준다고 느끼면서 말이에요.
전 여전히 나의 공간을 정리하고 꾸미는데 소질이 없지만, 나의 공간을 조금이라도 돌보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공간을 돌보는 것은 나를 살고 싶은 방향으로 움직여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리의 완성도가 아니라, 정리해보려는 마음이 내 삶을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앞으로 몇 년 남지 않은 저의 30대를 ‘정리’에 관하여 이렇게 정의하고 싶네요. ‘비록 정리는 잘 못 할지라도 나의 공간을 잘 돌보려고 노력하는 사람, 나의 꾸밈 센스를 셀프 존중하는 사람, 공간을 통해 나를 다시 살려내는 법을 배워가는 사람’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