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요
아기 때부터 잘 토하고 먹지 못했던 탓인지 초등 1학년 때 몸무게가 17kg였던 저는 소화기관 수술을 받고 수영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식욕이 늘어갔어요. 그 결과 3학년 때 통지표에는 ‘경도비만’ 이라는 네 글자가 적혔고, 4학년 때는 나한테 “돼지”라고 놀려대던 남학생과 주먹다짐을 하기도 했습니다. 달덩이 같은 얼굴과 ‘조선 무다리’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저는 대학교 가면 살 다 빠진다는 어른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으며 초, 중, 고등 시절을 통통하게 보냈습니다.
그러나 대학에 입학해 4인 1실 기숙사에서 룸메이트들과 매일 야식을 먹던 저는 인생 처음 보는 몸무게에 직면했고, 1학년 중간고사가 끝나 집에 내려왔을 때, “살 못 빼면 여름방학 때 내려오지 마라.”라는 엄마의 충격적인 말을 듣고야 말았습니다. 한창 예쁜 시기에 딸이 살이 찌는 모습, 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모습이 속상하셨던지 엄마는 딸이 제주에 내려오자마자 단식원을 등록해주셨습니다. 2주간 식사하지 않고 효소와 물, 소금만 먹었고 단식원 끝나고 오는 길 헬스장에 들려 2시간씩 운동도 했습니다. 이틀에 하루는 지방 분해 효과적이라는 냉온욕 하러 목욕탕도 갔어요. 그 2주간은 정말 다이어트 생각만 하고 살았습니다. 살이 점점 빠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어요. 운동하고 집에 오는 길에는 노란 하늘이 내 머리 위로 빙빙 돌았고 집에 오면 지쳐 누워있기만 했습니다. 그 결과 방학 전 학교에서 저녁을 안 먹고 뺀 몸무게 3kg, 단식하며 감량한 몸무게 5kg, 총 8kg 정도를 한 달 만에 감량했어요. 다이어트 후, 옷 치수가 줄고 연애편지도 받았지만 3년여간의 생리불순과 다이어트 강박증도 함께 얻었습니다.
무언가를 먹으면 바로 체중계에 올랐고 100그램 많게는 1킬로그램이 증가하면 어김없이 우울감과 좌절감에 빠져들었어요. 친구들과 약속이 있는 날이면 그날은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로 친구들을 만났고, 심하게 폭식을 한 날엔 이불을 쓰고 누워 몇 시간이고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직장인이 되었을 땐 아침엔 사과 한 알, 저녁엔 고구마 반쪽으로 끼니를 때웠고 남자친구가 생기지 않는 게 나의 뚱뚱한 몸 때문이라는 생각으로 가득해 눈물로 주말을 날려버리곤 했습니다.
결혼, 임신, 출산을 겪으면서도 버리지 못했던 다이어트 강박은 올해 초까지도 계속되었습니다. 휴직하고 혼자 점심을 먹는 일이 많아져 맛있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차마 먹을 수 없는 음식을 배불리 시켜 먹곤 저녁을 굶는 날이 늘어갔습니다. 게다가 푹 쉬고 싶다는 생각에 짧은 거리에도 차를 몰았고 운동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6월쯤 되었을까, 밤에 자려는데 갑자기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넘어진 적도, 운동한 적도 없었는데 뼈도 아닌 근육도 아닌 이상한 느낌의 통증이 지속되어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결국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방문한 신경과에서 제 통증이 철분 부족으로 생긴 하지 불안 증상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평소 건강하지 못한 음식을 폭식하고, 폭식 뒤 끼니를 거르는 습관이 몸속에 철분을 만들어내지 못해 신경전달물질의 이상으로 다리가 저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다이어트 하세요? 다이어트는 인제 그만두세요.”라는 말이 정말 진지하게 들려 그날 이후 저는 하루 3끼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하루 1~2끼 먹던 몸이 3끼를 먹으니 살은 점점 늘어가고 얼굴은 매일 붓기 일쑤였습니다. 음식을 먹는 행복을 전보다 더 누리는 데도 마음은 점점 불안해졌어요. 한 달 정도 철분제와 3끼를 꼬박 챙겨 먹자 몸은 어느 정도 회복되어 밤에 잘 수 있을 정도로 통증이 덜해졌지만, 거울에 비친 뚱뚱한 나의 모습을 보며 속상한 마음은 더 커져만 갔습니다. 이런 저에게 남편이 운동을 해보자고 하더군요. 아침 6시~7시, 월수금은 남편이, 화목토는 제가 밖에 나가 운동하기로요. 그 시간에 운동을 안 하는 사람이 아이들을 돌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격일 아침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일어나서 엄마를 찾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아침 일찍 이불에서 일어나는 데에는 많은 인내가 뒤따랐습니다. 하지만 퉁퉁 부은 내 모습을 핸드폰 배경 화면으로 해놓고, 아파서 잘 못 잤던 지난 일을 떠올리며 일어나자마자 아무 생각하지 않고 운동화를 신었습니다. 아파트 뒷길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걷고 뛰며 서로에게 무언의 응원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응원받은 나도 발이 가벼워져 오랫동안 땀나게 뛰어보기도 했습니다. 갈 때는 진짜 가기 싫은데 막상 갔다 오면 기분이 무척 좋아지는 운동의 매력을 그렇게 알아갔습니다. 그렇게 주 3회 걷기 운동을 하며 저녁을 일찍, 적게 먹었더니 3개월간 5kg이 줄었습니다. 예뻐지기 위한 절식, 단식이 아닌 건강해지겠다는 나의 의지로 이뤄낸 결과였습니다. 예전처럼 폭식하지 않았고, 식욕이 올라오면 양껏 많이 먹었습니다. 떡볶이, 라면 같은 것 대신에 고기, 밥, 채소를 먹었습니다. 과자랑 탄산음료가 먹고 싶을 땐 한 번씩 너그러이 먹기도 했어요. 그냥 먹고 싶을 땐 먹고, 먹고 싶지 않을 때는 먹지 않았어요. 전처럼 무작정 참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했을 뿐인데 몸은 조금씩 변하고 있었어요.
솔직히 요즘은 아침 운동을 잘 못 합니다. 해가 뜨지 않은 추운 겨울 아침 밖을 나갈 의지가 좀처럼 생기질 않네요. 하지만 저는 그런 저를 몰아붙이지 않으려고요. 대신,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니고 오후에 시간을 내 산책도 해봅니다. 그리고 주말에는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기도 합니다. 다음날 몸무게는 어김없이 1kg 늘어 있지만 ‘오늘은 좀 가볍게 먹고 좀 더 걸어보자.’라며 나를 위로하고는 거기서 끝내려 합니다.
내년에 복직하면 아마 스트레스를 받아서 또 매운 볶음면을 2~3그릇씩 먹고 후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다음 날에는 더 건강해질 나를 위해 건강한 음식으로 내 몸을 달래고, 걷기도 해보렵니다. 매일 열심히 운동하시고 식단 조절하시는 60대 우리 부모님을 보며 이건 인생의 장기레이스라 생각하고 하루 일에 너무 심각하지 않으려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나의 욕구를 존중하고 더 건강해질 나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이 생각들이 내가 다시 나를 미워하려 할 때마다 조용히 나를 붙잡아주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