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안개초와 장군이

전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요

by 다은

작년 봄, 아이들을 시댁에 맡기고 남편과 드라이브하다 우연히 화원에 들렀습니다. 봄기운을 느끼고 싶어 별생각 없이 들렀던 그 날, 향기 가득한 꽃들을 보니 내 회사 책상에 놓을 작은 화분을 사고 싶었습니다. 회사에서 바쁘고 정신없는 봄을 보내고 있던 나에게 작은 선물을 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골랐던 꽃은 분홍 꽃이 자잘하고 그득하게 핀 안개초였습니다. 멀리서 보면 작은 안개처럼 흐드러져 있고, 가까이 들여다보면 반짝이는 별처럼 꽃잎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느낌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줄기가 가늘어 키우기 까다롭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친구의 포근한 매력에 끌려 분홍 사기 화분에 예쁘게 분갈이해서 회사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 친구와 함께했던 봄은 짧았지만, 아직도 그 시간이 선명하게 기억이 납니다. 자리에 앉아 정신없이 일하다가도 모니터 옆에 있는 달콤한 분홍빛을 보면 살며시 미소가 지어졌어요. 해가 잘 들어오는 오후 3시에는 안개초를 친구 삼아 짬을 내 커피를 마시고 멍도 때렸습니다. 안개초와 함께한 지 2개월쯤 지났을 때, 분홍 꽃과 연두 줄기가 싱그럽던 나의 안개초는 꽃잎과 줄기까지 모두 거멓게 변해 조각조각 떨어졌습니다. 안개초는 다습한 환경을 싫어한다는 걸 화원 주인이 알려줬는데도 정성을 들이고 싶어 자꾸 물을 주었던 게 원인인 듯했습니다. 더 꽃을 피울 수 있었던 안개초에게 미안한 마음과 활짝 꽃핀 예뻤던 모습을 기억에 남기고 싶어 안개초의 마지막 조각들이 놓인 화분을 한동안 버릴 수 없었습니다.

올해 5살이 되며 관심사가 곤충으로 바뀐 자칭 곤충 박사 둘째를 위해 어린이날 선물로 사준 장수풍뎅이 한 쌍 ‘장수’, ‘풍뎅’을 시작으로, 할아버지가 집 근처 마당에서 잡은 장수풍뎅이 ‘장군이’, 아빠와 함께 중산간 참나무 아래서 잡은 사슴벌레 ‘넙적이’, 곤충 샵에서 데려온 항라사마귀 ‘초록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처음 정을 주었던 장수풍뎅이 암컷 ‘풍뎅’은 집에 온 지 2주 만에 생을 마쳤습니다. 알을 낳으러 톱밥으로 들어간 줄로만 알았던 ‘풍뎅’을 묻어주기 위해 살며시 들어 올리던 그 순간, 눈물이 광광하게 맺혀 하염없이 흐르던 아들의 슬픈 얼굴이 가여워 저도 함께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그렇게 ‘풍뎅’을 떠나보내고 2개월 뒤, 큰 턱이 멋지던 수컷 장수풍뎅이 ‘장수’도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장수풍뎅이가 성충이 되어 2~3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때 비로소 실감했습니다.

아들은 ‘풍뎅’과 ‘장수’ 다음으로 키운 장수풍뎅이 ‘장군이’를 제일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그런 사랑에 보답이라도 하듯 ‘장군이’는 힘차게 뿔과 다리를 움직이며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건강하고 활발하던 장군이도 10월쯤 되자 기력이 쇠해져 움직임이 느려졌습니다. 그때는 우리 집에서 2개월 정도 같이 지낸 상태였는데 아들이 눈물을 꾹 참으며 저에게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엄마, 나 장군이를 다시 자연으로 보내주고 싶어. 장군이가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자기가 살던 자연에서 행복하게 지내다 하늘나라로 갔으면 좋겠어.” 아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장군이와 죽는 날까지 함께 하고 싶은 마음과 남은 기간 장군이가 행복해지는 걸 바라는 마음 사이에서 고민하는 듯 보였습니다. 전 그런 아들에게 “장군이는 남은 생을 자연에서 지내는 것보다 지금처럼 도경이와 함께 있기를 더 바랄 거야. 장군이를 끝까지 잘 돌봐주자.”라고 다독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들은 소리 내어 엉엉 울었습니다. 저도 장군이가 하루라도 더 우리 곁에 있어 주길 바라며 아들과 함께 오랫동안 울었어요. 그렇게 아들이 사랑하던 장군이는 일주일 정도 우리와 마지막 시간을 행복하게 지내다 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던 가을날 아파트 화단 나무 밑에 조용히 잠들었습니다.

2025년이 얼마 남지 않은 요즘, 내년 봄이면 복직해 회사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곤 합니다. 전 내년에도 회사 책상 한 켠에 식물을 키울 생각입니다. 그게 안개초일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작년 안개초에게 주었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랑을 주고 싶어요. 햇빛도 꾸준히 쐬어주고 물도 알맞게 주면서 말이에요. 그렇다고 안개초를 잊지는 못할 거 같아요. 안개초와 함께 했던 작년 봄의 기억이 나에게는 큰 행복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을 건네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작은 화분이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제 회사생활에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으니까요. 안개초에게 참 고맙습니다.

우리 아들도 조만간 사마귀 ‘초록이’와 또 한 번의 이별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초록이가 알을 낳았거든요. 아들도 사마귀가 알을 낳고 나면 얼마 살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아들은 정을 주던 반려 곤충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매번 눈물을 뚝뚝 흘리지만, 아들의 마음속 한켠 한켠에는 ‘풍뎅’, ‘장수’, ‘장군’이와의 추억이 깊숙이 새겨져 있음을, 이별을 인정하고 남은 시간 정성껏 돌보며 점점 단단해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돌봄은 함께 있는 동안 대상에게 마음을 다하고, 아끼고 사랑했던 존재가 떠나는 것을 받아들이며 마지막 순간까지 곁을 지켜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안개초와 반려 곤충들이 떠난 자리에는 슬픔만 남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향했던 우리의 마음과 함께했던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이것이 현재의 우리를 살게 하고 또 다른 누군가를 아끼고 돌보게 할 것이라 믿습니다.

작가의 이전글13. 경도비만과 공복 유산소 그사이 어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