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글 쓰고 싶어 애들을 빨리 재웁니다

전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요

by 다은

매일 밤 8시면 나는 아이들 책을 읽어주려 슬슬 시동을 겁니다. 아이들은 아빠 2권, 엄마 2권 함께 책을 읽고 나면 잠자리에 들고, 그다음엔 온전한 제 세상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결혼 전까지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이었습니다만, 육아하고 아이를 재우고 나면 나만의 시간이 절실히 필요해 졸려도 조금씩 버티다 보니 지금은 올빼미가 되어버렸습니다. 책 1권만 더 읽어달라는 간절하고 기특한 부탁에도 세상 어디에도 없는 냉정함으로 아이들을 재웁니다. 심심하다고 아이에게 말을 걸 수도 없고, 교육적인 측면을 생각해 핸드폰을 보기도 애매한 이 시간. 원래 이 시간엔 온몸에 힘을 빼고 ‘아 오늘도 끝났다. 얼른 쉬어야지.’라고 생각하고 아이보다 먼저 잠이 들거나, 아이가 잠들면 핸드폰으로 인스타, 유튜브 보기 바빴는데 올가을 들어서며 제 행동이 바뀌고 있습니다.

‘이 주제에 이 내용을 넣어보는 건 어떨까. 오늘은 몇 시까지 쓰지?’ 요즘, 글쓰기에 몰입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잠드는 시간은 일분일초 느리게 흘러가지만 글 한 편 쓰는 2~3시간은 금방 지나가 있습니다. 잠만보가 별명인 제가 글쓰기에 한 번 집중하면 끝나도 여운이 계속돼 잠이 쉽게 오질 않습니다. 남편은 요즘 내가 남편이 아닌 글쓰기에만 너무 빠져있다며 귀여운 질투를 하며 오늘도 먼저 자러 들어갔습니다.

글을 쓰며 몰입하는 내가 좋습니다. 몇 년 동안 아이를 키우며 회사일, 집안일 하느라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근데 웬걸, 글쓰기는 몰두가 저절로 됩니다. 조용한 밤 노트북이나 펜을 잡고 가만히 앉아 보이지 않는 나를 떠올리는 일은 참으로 멋진 일입니다. 글을 쓰며 가끔 음악을 듣는데 음악 소리가 들리지 않는 순간이 느껴질 때 슬며시 미소가 번집니다. ‘다은, 잘하고 있어.’ 하고요.

글을 쓰며 치유 받는 기분이 듭니다. 자기 전 침대에 누워 이런 저런 생각하다 옛 기억을 더듬다 보면 속상하고 불편한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한 번은 옛날 일을 생각하다 억울하고 답답해서 책상에 앉아 공책에 끄적끄적했더니 마음이 편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적고, 다시 읽으며 정확한 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가장 어울리는 단어와 문장을 고심하다 보면 불편하다고 느꼈던 장면도 나에게 또 다른 의미를 전해줌을 느낍니다. ‘내가 그때 이런 감정이었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하고 나를 저절로 되돌아보게 합니다. 이불킥 할 만큼 창피했던 실수도 용서가 되고, 남편의 미웠던 말 한마디도 일리가 있다고 느껴집니다.

전 글을 쓰려고 앞으로도 아이들을 일찍 재울 겁니다. 나의 하루를 알차게 기록하고 그날의 생각과 감정을 되돌아보며 절 위로해주는 연습을 오랫동안 해보고 싶습니다. 잠이 중요한 저에게 이런 결심과 소망은 큰맘 먹고 내린 결정입니다. 한편, 내가 80대 할머니가 되었을 때 내가 쓴 글들은 열심히 모아둔 연금만큼 저에게 큰 선물이 되어있을 거라는 행복한 꿈도 꾸어봅니다. 따뜻한 차를 옆에 두고 한 단어, 한 문장, 한 페이지를 돋보기안경으로 읽으며 주름진 얼굴로 활짝 웃는 다은 할머니를 마음 속에 비밀스럽게 그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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