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요
이 주제로 글을 쓰려고 생각했을 때 마음이 복잡하고 머뭇거려졌습니다. 제가 독자분들의 삶을 다 알지 못하고, 또 얼마나 힘드신지 감히 가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제가 이 편지를 써야겠다고 다짐한 건 독자분들께 제 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꼭지를 만들어 제 안에 오래 쌓여 있던 마음을, 가능한 한 숨기지 않고 드리고 싶어서였습니다.
나를 원망하고 세상을 미워하던 그 시절을 떠올리면 가슴을 치며 울던 모습, 한참을 울어도 바뀌는 게 없는 것 같던 주변 상황이 생각나 마음이 시리게 아픕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떻게 견뎠을까.’ 하구요. 여러분께도 “얼마나 힘드실까요. 견디느라 많이 힘드시죠.” 하고 위로해 드리고 싶습니다. 손을 꼭 잡고 살며시 안아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눈물이 다 나온 것처럼 느껴질 때까지 같이 울어드리고 싶어요. 또 마음에 얹혀있는 돌이 가벼워지도록 독자분들의 이야기를 끝날 때까지 가만히 들어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어떻게 우울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는지 말씀드린다고 해서 독자분들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하지만 ‘쟤(다은)같은 사람도 있구나.’라고 지나가듯이 쓰윽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저에게, 그리고 독자분들에게 쌀알만큼의 도움은 되지 않을까 싶어 더 용기를 내봅니다.
이 책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제가 책에서 우울을 벗어날 희망을 찾았고 이를 다른 분들과도 공유하고 싶은 마음 덕분이었습니다. 빌린 책을 다 읽지 못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도서관에 갔고, 어린 아기를 돌보며 잠이 부족한 데도 수유 등을 켜고 조금씩 책을 읽었습니다. 내가 왜 우울한 건지, 어떻게 하면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하더라고요. ‘육아가 힘들어 그런 것일까.’ 생각해 육아서, ‘남편과의 갈등으로 인한 것일까.’ 생각해 부부관계서, 심리학책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머리가 너무 복잡한 날은 마음이 편해지는 짤막한 수필집을 읽기도 했고요.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 마음과 상황이 답답해 책만 찾아보던 시절, 2~3일 울며 은둔해있다가도 꾸역꾸역 도서관을 향해 차를 몰던 나에게. 마음에 드는 구절이 많은 책을 따로 구입해 조금씩 필사하던 나에게. 그때의 나에게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 자그만 ‘힘을 내는’ 노력이 모여 지금의 나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젠 그렇게 고민하던 문제-어떻게 하면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의 답을 어렴풋이 알 정도가 되었습니다.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을 고민하고 조금씩 실천해보거나 실천이 어려우면 근처라도 가보는 것.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을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는 것. (물리적으로 버릴 수 없다면 마음으로 버리기)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나에게 맛있는 음식과 재미있는 영상을 대접하는 것. 내 얼굴과 머리를 깨끗이 씻겨주고 5분만 밖에 나가 숨 크게 들이쉬고 오는 것. 내가(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고 아주 가끔은 만날 용기를 내는 것. 이것들은 방법이라기보다 내가 나를 다시 삶 쪽으로 불러들이던 작은 신호들이었습니다.
‘힘들다’라고 느낀 지 8년, 우울증 진단받고 약을 먹은 지 4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아이들을 키우며 직장 다니는 평범한 저에게 많은 일이 일어났고, 여러 사람이 지나쳐갔습니다. 이 글은 하루하루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실제로 나아지는 모습을 남기고 싶은 저, 다은의 기록입니다. 제가 다 나았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제 삶은 여전히 태풍 앞 모래사장처럼 파도가 요동쳤다, 잠잠해졌다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겐 아직 저의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고 남편에겐 가끔 울컥 화가 나며 대비할 수 없는 사건, 사고가 계속해서 일어납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내가 너무 가엾어. 왜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 걸까.’라는 마음 대신 ‘괜찮아. 다 지나갈 거야. 난 이번 파도와도 잘 지낼 수 있어.’ 라고 마음을 보듬어봅니다.
“힘내.”라는 말이 우울증 환자에게는 그렇게 와닿지 않는 말이라 들었고 예전의 저 또한 그렇게 느꼈습니다. 힘을 내려고 해도 전혀 힘이 안 나 기초적인 생활도 잘 안되던걸요. 하지만 저는 마지막으로 독자분들에게 꼭 힘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힘을 내어 이 상황을 견디고, 극복하고, 행동하라는 의도가 아닙니다. 마음이 다쳐 힘들어하는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고 달래는 힘, 자신 내면의 소리를 들으려고 꼭 한 번만 힘내보시라고 하고 싶어요. ‘내가 힘든 이유는 뭐지? 내가 어떻게 하면 좀 편해질 수 있지? 내가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건 뭐지?’ 내면에 귀 기울여보는 시도를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그게 잘 안된다면 저처럼 상담이나 병원 진료도 함께 받아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외부 도움을 받은 이후 저는 눈에 띄게 좋아졌거든요. 그건 약해졌다는 증거가 아니라, 살아보려는 선택이었습니다.
인생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저의 남은 인생도 저에게 행복이나 기쁨만큼 많은 아픔과 고뇌를 가져다주겠죠. 하지만 나 다은은 여기서 주저앉기만 하는 게 아닌, 눈물도 뚝뚝 흘려보고 골똘히 고민해보면서 점점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진 저에게 기립박수를 쳐줄래요. 그리고 오늘이 어제보다 나빠졌을지언정 다시 할 수 있다며 용감하게 내일을 시작하는 저를 포근히 안아줄래요.
마침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새해의 첫날입니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내면의 소리를 글로 적어보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곤 합니다. 이런 마음을 일 년 주기가 아닌 한 달, 일주일, 빠르면 하루에 한 번씩 가져보면 어떨까요. 자신만의 속도로, 우리 함께 ‘힘을 내어’ 지금보다 아주 조금씩 더 나아져 보아요. 많이 느려도 괜찮아요.
독자분들, 그리고 저 다은의 마음 회복과 내면의 성장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