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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막 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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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흐름 Feb 24. 2023

유칼립투스의 설득

생을 지지키로




동네 마트에서 사다가 방 화병에 꽂아둔

유칼립투스 나무줄기에서

향기로운 꽃내음과 싱그러운 잎내음이 난다.

비록 나무에서 잘려나갔어도

잎에 무성하게 깃들어 남은 녹색의 영이

향기로, 색으로,

창너머 들어오는 바람에 살랑이는 움직임으로 

내가 자연을 더 사랑하도록 설득 중이다.

그리고  꺾어진 나무줄기가

내가  손으로는 살아있는 무를 꺾지 도록

자신의 생의 아름다움을 바쳐 간절하게

나를 설득하고 있다.


생이여,

미안하다.

너를 소비하는 

너의 계절을 빼앗는 것이

네가 새와 벌들과 나눌 대화를 빼앗는 것이

니 달빛과 노을을 빼앗는 것이

니 몸뚱아리를 빼앗는 것이

니 뿌리를 빼앗는 것이

니 열매와 꽃을 빼앗는 것이

니 다음 세대를 빼앗는 것이.


내가 생명을 소비하기 때문에

생명의 뿌리를 뽑고 몸을 잘라도 상관없는

그런 문화를 지지하기 때문에

시들어가는 유칼립투스 나무줄기가 오늘

혼신의 애를 쓰며

자기 생의 아름다움을 내 방 한구석에서

오롯이 인간 하나를 설득하는데

바치고 있다.


진하게 남을 것이다.

니 설득의 향이.

깊이.

유칼립투스야.


덕분에 나는 이 순간

변한다.

너의 계절을 지지키로.

네가 새와 벌들과 나눌 대화를 지지키로.

니 달빛과 노을을 지지키로.

니 몸뚱아리를 지지키로.

니 뿌리를 지지키로.

니 열매와 꽃을 지지키로.

니 다음 세대를 지지키로.


우리가 자연과 화평하기를

지지한다.

내가 행동으로.


네가 바치는 생 덕분에.

유칼립투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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