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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막 사춘기

유칼립투스의 설득

생을 지지키로

by 정흐름




동네 마트에서 사다가 방 화병에 꽂아둔

유칼립투스 나무줄기에서

향기로운 꽃내음과 싱그러운 잎내음이 난다.

비록 나무에서 잘려나갔어도

잎에 무성하게 깃들어 남은 녹색의 영이

향기로, 색으로,

창너머 들어오는 바람에 살랑이는 움직임으로

내가 자연을 더 사랑하도록 설득 중이다.

그리고 이 꺾어진 나무줄기가

내가 내 손으로는 살아있는 나무를 꺾지 않도록

자신의 생의 아름다움을 바쳐 간절하게

나를 설득하고 있다.


생이여,

미안하다.

너를 소비하는 것이

너의 계절을 빼앗는 것이

네가 새와 벌들과 나눌 대화를 빼앗는 것이

니 달빛과 노을을 빼앗는 것이

니 몸뚱아리를 빼앗는 것이

니 뿌리를 빼앗는 것이

니 열매와 꽃을 빼앗는 것이

니 다음 세대를 빼앗는 것이.


내가 생명을 소비하기 때문에

생명의 뿌리를 뽑고 몸을 잘라도 상관없는

그런 문화를 지지하기 때문에

시들어가는 유칼립투스 나무줄기가 오늘

혼신의 애를 쓰며

자기 생의 아름다움을 내 방 한구석에서

오롯이 인간 하나를 설득하는데

바치고 있다.


진하게 남을 것이다.

니 설득의 향이.

깊이.

유칼립투스야.


덕분에 나는 이 순간

변한다.

너의 계절을 지지키로.

네가 새와 벌들과 나눌 대화를 지지키로.

니 달빛과 노을을 지지키로.

니 몸뚱아리를 지지키로.

니 뿌리를 지지키로.

니 열매와 꽃을 지지키로.

니 다음 세대를 지지키로.


우리가 자연과 화평하기를

지지한다.

내가 행동으로.


네가 바치는 생 덕분에.

유칼립투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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